경기도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집값이 맥을 못 추고 있다. 10만원을 바라보던 삼성전자 주가가 '5만전자'로 주저앉은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기지를 배후지로 둔 고덕 집값도 30% 넘게 떨어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1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평택시 고덕동 '고덕신도시자연앤자이' 전용면적 84㎡가 이달 5억7000만원(12층)에 거래됐다. 이 단지 전용 84㎡가 2021년 기록한 이전 최고가 9억원(10층)에 비해 36.7% 내린 가격이다.
인근 다른 아파트 시세도 최고가 대비 약 30% 내린 모습을 보인다. '고덕국제신도시제일풍경채' 전용 99㎡는 지난달 7억3000만원(23층)에 팔렸다. 2021년 기록한 이전 최고가인 11억2500만원(14층)보다 35.2% 낮은 액수다. '고덕국제신도시파라곤' 전용 84㎡도 지난달 6억6000만원(24층)에 손바뀜됐다. 이전 최고가인 2021년 9월 9억8000만원(15층) 대비 32.7% 하락했다.
고덕신도시 집값이 증시 하한가(-30%)를 넘어설 정도로 하락한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있다. 고덕국제신도시와 맞닿은 산업단지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이곳에 3개 공장(P4·P5·P6)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부동산 폭등기에는 삼성전자를 호재로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와 투기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치솟았다.
지금은 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P5 공장 기초공사를 멈췄고 P4 공장 설비 투자도 미뤘다. 공사가 미뤄지며 일부 건설업체들은 삼성전자와 계약을 해지했고, 공사 인력도 대거 빠져나갔다. 각각 30조원을 투입해 짓고 가동 중이던 P2·P3 공장은 일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 전원을 내리는 '콜드 셧다운'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해 상반기에만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3분기에도 1조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계속된 실적 악화에 2021년 10만원을 바라보던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 5만5100원을 기록하며 5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삼성전자 주가가 치솟던 2021년에는 고덕신도시 집값도 치솟았지만, 삼성전자가 '5만전자'의 늪에 빠지자 함께 추락한 셈이다.
고덕동 개업중개사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나 서울 접근성을 이야기할 것도 없다. 고덕 집값은 삼성전자 주가에 따라 움직인다"며 "삼성이 잘 되면 함께 잘 되고 안 되면 함께 안 되는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거래가 시작된 단지를 제외하고 준공 4년 차 이상만 본다면 최근 1년 사이에 집값이 1억원씩은 떨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개업중개사도 "집값이 내리막길을 걸으니 급매물이 적지 않게 나왔다"며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평택캠퍼스의 배후 주거지라 거래 자체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어 "주변 상가는 공실이 가득하고 빌라는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파트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평택 아파트값은 이달 첫 주 0.03% 하락했다. 지난 8월 첫 주 이후 14주 연속 하락세다. 평택 집값은 올해 누적으로 2.41% 내렸다. 같은 기간 수도권 집값이 1.84%, 경기 집값이 0.55% 오른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일대 집값이 내리면서 분양 시장에도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평택에서 분양에 나선 아파트 가운데 순위내 기준으로 △'신영지웰 평택화양(971가구 미분양)' △'평택푸르지오센터파인(731가구 미분양)' △'평택화양동문디이스트(717가구 미분양)' 등 상당수가 미분양을 기록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평택의 미분양 주택은 2847가구에 달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 미분양 주택 9521가구의 약 30%가 평택에 몰려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입지나 가격 경쟁력도 문제지만, 가장 큰 이유는 평택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부진에 빠졌다는 점"이라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정상화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올해와 내년 예정된 평택 분양물량도 상당해 집값은 당분간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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