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의 변심

입력 2024-11-11 17:42   수정 2024-11-12 00:11

“저는 대부분의 삶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내며 ‘당연히’ 민주당을 찍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닙니다.”

미국 대선일인 지난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한 투표소 앞에서 만난 30대 아시아계 남성 유권자는 “다음달 태어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젠더는 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식의 교육을 받게 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과거 로스앤젤레스(LA) 도심 한복판에서 괴한의 총격에 다리를 다친 적도 있다고 밝힌 그는 “민주당이 장악한 캘리포니아에서는 나같이 무고한 시민이 마약에 취한 범죄자들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는 게 일상이 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민주당에 대한 심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기록한 캘리포니아주 득표율은 39%다. 이전에 출마한 2016년(32%)과 2020년(34%) 대선 때보다 득표율을 크게 끌어올린 건 물론, 2004년 대선 이후 20년 만에 공화당 후보의 최고 득표율을 경신했다. 캘리포니아의 전체 58개 카운티 중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한 카운티는 2020년 23개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절반이 넘는 31개다.

현지 밑바닥에서 느껴지는 이번 대선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보다는 ‘민주당에 대한 심판’에 가깝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는 트럼프가 좋아서라기보다 주정부·주의회는 물론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에 할당된 연방 상원의원까지 독식한 민주당에 대한 분노로 투표장을 찾았다. 공립학교에서 의무화된 성소수자 관련 교육과 경찰력의 강화를 인권 탄압과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로 결부하는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 주의’ 정책이 자신들의 삶을 위협한다고 느꼈다.

여기에 민주당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과 ‘부자 증세’ 공약은 테크업계 종사자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빅테크의 엔지니어라고 밝힌 40대 인도계 남성 유권자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규제 만능주의였다”며 “이미 살인적인 집값에 세금까지 더 오르는 걸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만함이 오판 불러와
지금은 대표적인 ‘블루 스테이트’로 꼽히지만, 캘리포니아가 항상 민주당 텃밭이던 것은 아니다. 1960~1988년 치러진 여덟 번의 대선 중 민주당은 1964년을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졌다. 공화당 우세 지역이었지만 라틴계와 아시아계 이민자 인구가 늘고,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로 진보 성향의 유권자가 대거 이주하며 정치 지형이 바뀐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캘리포니아의 정치 지형이 다시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캘리포니아의 변화는 한국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캘리포니아를 소위 ‘깃발만 꽂으면 되는 곳’으로 바라본 민주당의 태도는 영·호남을 대하는 한국 여야 양당의 태도와 놀랍게도 비슷하다.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이기는 승자독식 구조의 미국 대선이나 소선거구제의 한국 총선은 “우리를 안 찍으면 어쩔 건데”라는 식의 오만함을 불러왔다.

하지만 오만함은 반드시 오판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캘리포니아에 사는 이민자라는 정체성에 기반해 투표했다면, 이번엔 처음으로 내 이익에 따라 투표했다”는 캘리포니아 유권자의 말을 한국 정치권도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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