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트럼프 랠리'에 나홀로 소외되면서 12일 오전 장중 2500선이 깨졌다. 장중 2500선이 붕괴된 것은 지난 9월11일 이후 처음이다.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에 원·달러 환율도 1400원 위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수혜주로 돈이 몰리는 현상)가 소강되는 과정에서 국내 증시 대비 대응이 유리한 다른 자산으로의 자금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실적 트리거(방아쇠)를 갖추고 있는 방산·조선이나 규제 완화가 예상되는 은행주에 주목할 것을 권했다.
12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간밤 뉴욕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거래된 원·달러 1개월물은 1400.0원에 최종 호가됐다. 이날 새벽 2시 마감가는 1401.0원으로 집계됐다. 전날 오후 3시30분 기준(1394.85원)보다 6.15원 올랐다. 환율 종가가 1400원 위에서 마감한 것은 2022년 11월7일(1401.2원) 이후 2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글로벌 증시에서 달러화 선점 움직임이 강한 영향이다. 이날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한 달러인덱스는 105.7을 넘었다. 4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감세 정책은 재정 확대를 유발해 국채 발행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채 발행은 금리 인하를 늦춰 달러 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 정책 또한 달러화 공급을 줄여 달러 강세의 원인이 된다.
달러화 강세는 수출 기업 증익에 유리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이를 상쇄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 보편관세 10%를 부과하면 대미 수출이 152억달러, 제3국 등에 대한 간접 수출이 약 70억~89억달러 각각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신중호 LS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의 환율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며 "과거 원·달러 환율 상승기에 국내 수출기업들이 같이 성장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반도체 수출 등이 부진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증시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외국인 국내 투자 매력도 하락→외국인 원화 자산 매도→원·달러 환율 상승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같은 자국 통화 약세지만 코스피는 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이 코스피를 대거 팔고 나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3.16% 떨어졌다. 이 기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790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예컨대 달러화 강세에 외국인이 환손실을 감안하고서라도 삼성전자 투자 수익률이 높으면 보유 매력이 있겠지만 현재로선 비교 우위에서 떨어진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외국인은 삼성전자에 대한 33거래일 연속 순매도 기록을 잠시 멈췄다가 최근 다시 재개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결과, 5만원대로 밀려난 삼성전자 주가는 미 대선 이후 연일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장중에는 5만3300원까지 밀리며 52주 신저가를 한층 낮췄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구조적인 이슈를 우려하고 이 문제가 해소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본다"며 "경쟁력이 한 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투자 대상을 바꾸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 증시의 대표 수출주인 도요타는 미 대선 이후 주가가 3.9% 올랐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기본적으로 수출 품목 중 자동차 수출 비중이 크기 때문에 (반도체 비중이 큰) 한국과 다르게 봐야 한다"며 "미국으로 수출되는 품목들 중 일본 자동차는 여전히 압도적"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3년 전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을 '사기'(scam)라고 표현했다. "(비트코인이) 달러와 경쟁하기 때문에 도저히 좋아할 수 없다"고 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선 180도 바뀌었다. 유세 중 자신이 '가상화폐 대통령'(crypto president)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머무르는 사이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도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어섰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 7일(결제일 기준) 1013억 6571만달러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 말 미국 증시 보관액은 680억2349만달러 수준이었지만 10개월여만에 49%가량 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상승률'이다. 이 기간 코스피는 3.54% 하락했지만 미국 대표 증시 지수인 나스닥과 S&P500은 각각 28.5%, 25.6% 뛰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5일 이후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김성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외주식 투자는 2020년 팬데믹부터 크게 증가한 뒤 2022년 국내 증시가 부진한 틈을 타 재차 급증했다"며 "여기에 연기금 등이 자산배분 전략상 국내보다 해외비중을 늘리기로 하면서 국내 증시가 더 소외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한 기업 인센티브도 중요하지만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들이 환류할 수 있도록 개인 투자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방안도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국 증시와 국내 증시의 디커플링(비동조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승 모멘텀이 남아 있는 조선·방산·은행주에 관심을 둘 것을 권했다.
김용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의 정부 인선 기조가 확인될 때까지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며 "실적 개선과 경기 방어주 성격을 동시에 갖춘 방산·조선, 금리인하 국면에서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은행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경/고정삼/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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