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은 11년 전으로 돌아간다. 국내 대표 철강기업인 포스코는 2013년 ‘고망간강’을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했다. 고망간강은 철에 망간을 10~30% 첨가한 철강소재다. 영하 165도의 극저온에서도 뛰어난 강도와 충격인성을 유지한다. 값비싼 니켈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됐다.
문제는 고망간강을 건조하는 선박에 곧바로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신소재를 화물 및 연료탱크에 쓰려면 국제해사기구(IMO)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다. IMO의 승인을 얻는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해사안전위원회(MSC)와 화물·컨테이너 운송 전문위원회(CCC)의 기능성·안전성 검토를 통과해야 한다. 선박 소재에 관한 국제 협약도 개정해야 했다.
한국이 개발한 신소재가 해양선박 소재 표준으로 인정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 해수부는 2015년 고망간강을 소개하는 문서를 IMO와 각국에 보냈다. 포스코와 산하 연구기관 등 민관이 팀을 꾸려 수십 차례 회의를 열고, 각국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상 강국인 일본이나 북유럽의 ‘텃세’도 이겨내야 했다”고 했다.
해수부의 노력은 2022년부터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고망간강이 LNG 등 극저온 화물·연료탱크용 선박 소재로 IMO의 승인을 받았다. 고망간강은 올해 5월엔 독성·부식성을 지닌 암모니아 화물·연료탱크용 선박 소재로도 IMO의 인정을 받았다.
업계에선 고망간강이 선박에 활용되면서 얻는 경제 효과가 수천억~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IMO는 각국에 2030년까지 해상운송산업의 탄소 배출을 2008년 대비 20%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선박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20~30% 적은 LNG 선박 수주가 늘어나고 있는데, 여기에 고망간강이 쓰이게 된 것이다.
이달 기준 고망간강 소재를 적용한 선박은 총 36척이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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