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신약을 만드는 데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 3조원의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과정부터 동물실험을 거쳐 임상시험으로 약효와 안전성을 증명해야 해서다. 신약이 출시된다고 반드시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시장에 출시된 약물 중 개발 비용을 감당할 만큼의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열 번 중 두세 번에 불과하다.
1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제약사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수조원에 이르는 신약 개발 비용에 대한 실패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바이오 기업이나 중소 제약사는 초기 연구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신 연구개발(R&D) 비용을 확보하고 제약사는 막대한 자금이 드는 임상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의 성공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오픈 이노베이션 바람에 불을 지폈다. 2015년 국내 바이오 기업 오스코텍의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도입한 렉라자는 올해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글로벌 기술이전한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항체 치료제와 병용요법으로 폐암 1차 치료제로 활용이 가능해졌다. 이번 허가로 올해 유한양행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평가되고 향후 해당 요법이 상용화되면 매년 수천억원의 로열티도 기대할 수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 10년간 총 50여 곳에 5000억원 이상의 전략적 투자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과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렉라자의 후속주자로 여겨지는 알레르기 치료제(YH35324·지아이이노베이션으로부터 도입)나 항암제(YH32367·에이비엘바이오로부터 도입)도 모두 국내 바이오 기업에서 가져온 물질이다.
일동제약의 R&D 자회사 유노비아는 지난 5월 대원제약과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에서 점유율이 꾸준히 늘고 있는 3세대 위장약(P-CAB·칼륨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을 개발한다. 대원제약은 유노비아가 보유한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 개발을 진행하고 국내 상업화 권리를 갖게 됐다.
종근당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한다. 4월 국내 바이오 기업 큐리진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고 암세포 증식 및 전이에 관련된 유전자(mTOR·STAT3)를 동시 표적하는 방광암 치료제를 개발한다. 종근당은 2022년 서울성모병원에 유전자치료제 연구센터(Gen2C)를 운영하는 등 유전자치료제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전통 제약사들과의 협업으로 시너지를 모색한다. 5월 일동제약그룹 자회사 아이디언스에 약 250억원을 투자하며 표적항암제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HK이노엔, GC녹십자와 계약을 맺고 비소세포폐암 표적항암제와 면역질환 신약을 공동 개발 중이다.
눈에 띄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있다면 전략적투자자(SI)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동구바이오제약은 5월 큐리언트에 100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에 올라선 뒤 경영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21년부터 뷰노, 디앤디파마텍, 지놈앤컴퍼니 등 국내 바이오 기업에 투자를 지속해 왔다.
기술 도입을 통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올 5월 HK이노엔은 중국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임상 3상 단계에 있는 비만약에 대한 기술이전 및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이전 단계 임상을 통해 안전성 및 내약성이 확인된 물질을 도입해 비만약을 신속히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곽달원 HK이노엔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만 치료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며 “국내 비만치료 시장에서 1000억원 이상의 성과를 내는 제품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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