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이데올로기는 당연히 사실적이어야 한다. 진실을 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대해 있는 그대로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가 어둡고 빈궁하며(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 돈 많은 할리우드와 달리 기술적으로 거칠게 찍을 수밖에 없는(로베르토 롯셀리니의 ‘무방비 도시’) 작품들이 많았던 이유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표현의 영역을 관념의 극치 사이를 오가게 하면서(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 영화예술이란 것이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네오리얼리즘은 세계 영화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다 옛날얘기다. 이제는 2020년대 이탈리아의 새로운 사조, 새로운 리얼리즘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많은 사람들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이름을 꺼내 들 것이다. 그의 ‘아이 엠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최고작으로 거론할 것이다. 그보다는 식인 커플의 얘기를 그린 ‘본즈 앤 올’을 더 잊을 수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젠데이아 콜맨의 강한 스매싱, 두 남자와의 쓰리섬 러브가 인상적인 테니스 영화 ‘챌린저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근데 이 감독, 이탈리아보다 할리우드로 넘어간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의 현존하는 ‘미친’ 감독 중에는 파올로 소렌티노도 있다. ‘그레이트 뷰티’ ‘유스’ ‘신의 손’ 등은 루카 구아다니노와는 다른 선상에서 소렌티노가 거장 반열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지만 이 사람 역시 이탈리아보다 범유럽적 감독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진실로 새로운 이탈리아 리얼리즘 계보는 누가 잇고 있는 것인가. 순혈주의적으로 진짜 이탈리아 현대영화 감독들은 누구인가. 그 점을 보여 주는 영화 상영회가 있다. 바로 ‘2024 이탈리안 스크린스’이다. 이탈리아 최신 영화 세 편과 클래식 한 편이 상영된다.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다.
이번 상영회 때는 세 명의 낯선 감독의 이름들이 소개된다. 파올라 코르텔레시, 마르게리타 비카리오, 그리고 마르코 벨로키오이다. 나머지 한편, 고전 작품은 역시나 페데리코 펠리의 138분짜리 대작 ‘8과 1/2’이다.
여성 감독 파올라 코르텔레시의 작품 ‘우리에게 아직 내일은 있다’는 흑백이다. 마치 1940년대 네오리얼리즘의 직계처럼 보인다. 내용도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들의 참정권 투쟁을 그린다. 이탈리아란 나라가 지닌 풍랑의 역사 그 한 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마르게리타 비카리오의 영화 ‘글로리아’는 뮤지컬이다. 수녀원이 배경이고 수녀들이 극 중 인물들이다. 1800년대가 배경이며 이탈리아 사회에서 종교가 지닌 자유와 속박의 이중성을 비교적 경쾌한 톤으로 그려 낸다.
특이한 작품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영화 ‘납치’이다. 가톨릭교회가 아동을 납치하는 이야기이다. 1858년이 배경이고 이탈리아 가톨릭이 지녔던 억압성과 폭력성, 무엇보다 일종의 신정 정치적 성격이 지닌 위선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한편으로 가톨릭교회의 웅장함과 그 양식 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2024 이탈리안 스크린스는 이탈리아 정부가 직접 나서는 행사이다. 예전의 이탈리아 영화가 가졌던 영광을 조금이라도 복구하겠다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탈리아 정부 부처인 문화부 산하, 영화 및 시청각 총국이 주도하며 이탈리아 외무부 국제협력부가 공동 주최한다. 여기에 이탈리아 내 메이저 스튜디오인 치네치타가 공동 주관사로 백업한다. 국내에서는 유럽 예술영화 전문 수입영화사인 일미디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행사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은 고전 중의 고전이고 걸작 중의 걸작이다. 이탈리아의 아랑 드롱이자 이탈리아의 그레고리 펙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연한 작품이다. 영화 제목만으로 영화를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아르떼 독자라면 이 영화 ‘8과 1/2’ 정도는 봐야 하는 작품이다.
2024 이탈리아 스크린스의 상영 일정은 아래 표와 같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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