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진 와인 잔’은 아내를 위한 선물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입력 2024-11-18 18:19   수정 2024-11-18 18:20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32>


몇 해 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프랑스 와인 시음회가 열렸다. 행사 중반 참가자 한 명이 디저트 와인 부스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종이컵을 들고 있는 그에게 아무도 와인을 따라주지 않았던 것. 당황한 나머지 좀 더 적극적으로 컵을 들이 밀었지만 주최 측 샤토(와이너리) 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푸른 눈의 이방인은 왜 그렇게 매몰차게 ‘와인 따르기’를 거부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자부심 강한 프랑스 와인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직원에게는 보르도 와인은 투명하고 볼 넓은 잔에 따르는 것이 정석이라는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와인을 종이컵에 마시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먼저 컬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짙은 루비 컬러는 와인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홍색 피노 누아에 담겨 있는 수백 가지의 꽃향을 잡는 것도 제한적이니 어찌 전용 잔을 포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도 와인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전용 잔 사용을 권장한다. 와인 잔은 액세서리 중 가장 중요하게 취급받는 품목이다. 어떤 종류, 어떤 모양의 잔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심리적 보상은 물론 와인의 풍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 잔의 종류와 그 특징을 살펴본다.
와인 잔은 크게 레드(보르도와 부르고뉴)와 화이트, 스파클링, 디저트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레드 와인 잔을 살펴보면 잔 입구, 림(맨 위 테두리 부분)이 좁을수록 향이 더 잘 모아진다. 또 볼(잔의 중간,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크면 와인이 잔에 닿는 표면적이 넓어져 풍부한 향과 맛을 잘 잡아낼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은 작고 둥근 모양의 잔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레드 와인 잔에 비해 지름이 짧고 와인이 닿는 표면적 또한 좁아 열 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찬 기운과 상큼한 맛을 공기 중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화이트 와인 특유의 강한 신맛을 덜 느끼도록 디자인된 제품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다면 스파클링 와인 잔은 어떨까. 일반 제품보다 볼이 좁고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거품의 향연’이 장시간 지속될 수 있도록 특별히 디자인되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축제나 파티장에서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파클링 와인 특유의 풍미를 느끼기 위해 볼 넓은 잔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와인 잔은 얇고 가벼울수록 고급 제품에 속한다. 입술 닫는 부분인 림이 얇아야 와인의 미세한 맛과 향을 잘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가격이 비싸고 내구성이 매우 약하다. 작은 충격에도 스템(손잡이 부분)이 쉽게 부러지거나 림부분이 금방 깨질 수 있다. 따라서 건배를 할 경우 볼 부분을 살짝 부딪치는 것이 안전하다.

대유라이프 이내경 부장은 “인간의 뇌는 와인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데 50% 이상을 후각에 의존한다. 리델 고유 디자인인 큰 달걀형 볼은 와인 향 발산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아로마의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리델 글라스는 섬세하고 정교한 독자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와인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다른 제품과 전혀 다른 신비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유라이프는 최고급 와인 잔인 리델의 국내 수입업체다.

‘와인 잔은 여자를 위한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12월은 감사의 달이다. 선물 받을 상대방이 와인을 잘 아는 마니아라면 취향 찾기에 고민하지 말고 고급스러운 와인 잔을 선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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