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 맞아? 아무리 봐도 내가 본 그림이랑 다른 것 같은데….”
카라바조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메리시(1571~1610)는 서양미술에서 중요한 사조 중 하나인 바로크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화가다.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인상적인 테네브리즘의 창시자로, 바로크 회화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카라바조의 값비싼 그림 10점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에 걸렸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 세 점을 비롯한 걸작들이 출품된 터라, 개막 당일인 지난 9일에만 2000명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을 정도로 주목도가 높다.
그런데 흥분된 마음으로 전시를 찾은 일부 관람객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유럽 미술관이나 책에서 본 카라바조 그림과 전시작품이 묘하게 다르다는 것. 대표적인 작품이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이 작품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이탈리아 피렌체의 로베르토 롱기 미술사 연구재단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시에 걸린 작품은 개인 소장품이다. 게다가 오른쪽 눈꺼풀 아래 눈물이 선명하게 묘사돼 있는 등 다른 두 소장처의 그림과 비교해 다른 점도 눈에 띈다.
관람객 사이에서 전시에 걸린 작품을 두고 진품이 아닐 수 있다는 나름의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 작품은 유럽 미술계에서 인정받은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세 번째 버전이자, 오히려 다른 두 작품의 원형이 되는 원본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두 버전과 달리 2006년에야 처음 발견됐고, 관련 연구가 늦어지며 덜 알려진 것이다.
실제로 카라바조는 생전에 같은 작품을 여러 점 그렸다. 이는 종교개혁으로 흔들렸던 가톨릭이 권위를 되찾아간 당시 시대상과 연관이 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가톨릭 유대감을 키울 장치로 그림이 활용됐는데, 이에 따라 로마에서 잘나가는 화가이던 카라바조에게도 같은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가 여러 차례 온 것이다. 호정은 큐레이터는 “카라바조의 그림은 사후 400년이 지난 20세기 들어서야 재평가되며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옛 귀족 가문에서 작품이 대대로 내려져 와 지금도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며 “전시 작품들은 귀속 과정 등을 확인한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추정작이나 후대 작가가 개입한 작품들은 명확하게 구분 지었다”고 설명했다.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으로 전시에 나온 ‘성 토마스의 의심’은 카라바조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엔 ‘카라바조 서클’이라고 쓰여 있다. 그의 영향을 받은 후대 작가가 완성했다는 뜻이다. 독일 포츠담 상수시 궁전 소장본이 원본이지만, 전시작 역시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할 만큼 인체 표현 솜씨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리스도의 체포’도 눈여겨보면 좋다.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소장품으로 유명한 이 그림은 전시작이 오히려 원본일 가능성이 제기될 만큼 귀속 과정이 상세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카라바조의 그림과 얼마나 닮았고, 어디가 다른지를 비평하며 보는 게 전시의 묘미다. 카라바조를 증오했지만, 그림만은 닮고 싶어 했던 조반니 발리오네 등 바로크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유승목/성수영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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