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심엔 폭스바겐그룹이 있다. 디젤 게이트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독일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런 폭스바겐이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세 곳을 폐쇄할 것이란 소식에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디젤 게이트가 도덕적 문제라면, 현재 위기는 구조적이어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얼마 전 독일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쟁력 훼손 요인을 조목조목 열거한 ‘반성문’을 썼다. 핵심은 차이나 리스크와 미래 기술 전환 부진이다.
폭스바겐을 도요타와 더불어 세계 자동차 양강으로 키운 건 중국 시장이다. 폭스바겐이 ‘다중(大衆)’이란 브랜드로 세계 자동차 기업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것은 1984년. 그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0달러였다. 당시 유럽에서 자동차 보급률이 가장 낮았던 포르투갈 정도만 돼도 1억3000만 대의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데서 희망을 봤다. 폭스바겐의 장인 정신은 중국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피하느라 경적을 과도하게 울리는 중국에서 차의 내구성을 위해 경적 성능 한도를 종전 5만 번에서 10만 번으로 늘릴 정도로 철저했다.
중국 사업 전성기에 폭스바겐은 전 세계 판매량과 영업이익의 4분의 1을 중국 시장에서 거뒀다. 제너럴모터스(GM)에 몇 년간 선두를 내준 것을 빼면 중국 정상에 머문 기간이 지난 40년 동안 30년을 넘는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중국은 합작과 기술 전수를 의무조항으로 걸어 ‘단물’을 빼갔다. 후일 총리에 오른 주룽지 같은 경제관료가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협박하는 식으로 이미 1990년대 중반 현지 부품 조달률이 90%대에 이르렀다.
현재 폭스바겐의 중국 내 39개 공장 가동률은 50%대다. 급기야 중국 자동차 기업에 1위 자리도 뺏겼다.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다. 중국 판매 상위 10위 전기차 중 폭스바겐은 물론 독일 차는 하나도 없다. 고급 차를 만드는 데는 뛰어났지만,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를 싸고 빠르게 만드는 흐름에는 한참 뒤처졌다. 독일의 강점을 가장 잘 분석한 책이라는 <독일은 왜 잘하는가>(존 캠프너)에서도 “미국과 아시아에서 하이브리드·전기차 연구개발이 치열하게 이뤄지는 동안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BMW는 잠을 자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영원히 ‘하수’일 줄로만 알았던 중국 기업은 그사이 호랑이로 크고 있었다.
국내 최고 기업 CEO도 얼마 전 ‘반성문’을 썼다. 삼성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기대 이하의 3분기 실적을 발표하던 날 사과문을 냈다. 그리 길지 않은 글에서 전 회장은 ‘위기’라는 말을 네 번이나 썼다. 더 큰 문제는 삼성의 위기 구조가 지금 난리가 난 폭스바겐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이 BYD에 휘둘리듯 삼성 역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같은 중국 후발 기업에 치이고 있다. 이들이 휴대폰·PC용 레거시 메모리 제품을 쏟아내는 탓에 반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큰 타격을 보고 있다. 폭스바겐이 전기차라는 미래 기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듯, 삼성 역시 AI 시대 메모리 총아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손을 놓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이 얼마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공장 폐쇄와 감원 발표 후 첫 노사협의회 때부터 1만여 명 노동자의 야유 속에서 파행을 겪었다. 삼성 전 부회장의 반성문은 내부를 추스르려는 취지도 있었겠으나, MZ 직원들은 ‘회사를 떠날 때인가’라는 반응이 더 많았다고 한다. 기업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아닐까 싶다. 마른걸레라도 쥐어짜듯 줄일 수 있는 건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것이 통하려면 새 좌표에 그물을 던지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오롯이 ‘원톱’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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