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규모 부실 우려를 샀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제도 수술에 나섰다. 당장 평균 5%에 불과한 자기자본비율을 2028년까지 20% 수준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고금리 등 대외환경이 변할 때마다 떨어졌던 안정성을 높이면서 주택 공급 효과는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고금리로 빌리는 ‘브릿지론’ 대신 소유주가 직접 토지나 건물을 현물로 출자하는 방식의 사업구조를 마련하면 양도차익 과세를 이연시키는 방안을 도입한다. 또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사업장엔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부실한 사업성 평가와 리스크 관리 규제는 강화한다.
정부는 14일 오전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 PF 제도 개선방안’을 공개했다. 현재 부동산 PF 시장이 작은 자기자본비율 탓에 금리 등 대외변수에 취약해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PF 사업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5%에 불과하다. 토지 매입부터 ‘브릿지론’으로 불리는 고금리 대출을 받기 때문에 자기자본 없이 대출로만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자기자본비율이 평균 30%에 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자기자본비율 로드맵을 통해 2026년 10%, 2027년 15%, 2028년 20%까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물출자를 통한 PF 사업 방식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PF 사업비에서 평균 30%를 차지하는 토지비를 자기자본으로 편입시켜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식이다.
정부는 앞으로 토지주가 토지·건물을 리츠에 현물출자하고 주주로 참여하면 양도차익의 과세와 납부를 이익 실현 때까지 이연키로 했다. 미국이 1992년 도입했던 ‘업리츠’와 같은 방식이다.
현재는 현물로 토지를 출자하면 즉시 법인세와 양도세가 부과된다. 개발 이익이 확정되기도 전에 세금부터 납부해야 해 사실상 출자가 불가능했다. 정부는 과세 이연과 동시에 선도사업 후보지를 공모해 현물출자 방식으로 진행하는 PF 사업에 대해선 용도·용적률 등 도시규제 제약이 없는 화이트존(입지규제 최소구역)으로 지정해 사업성을 보장해준다는 계획이다. 한국부동산원 등 공공에선 사업성 분석과 리츠 설립을 지원하는 등 안정적인 사업 진행도 돕는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사업장엔 각종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정부의 자기자본비율 로드맵에 따라 자기자본을 확충한 사업장에는 용적률 특례를 적용하고 공공기여 부담도 완화해준다.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진만큼, 보증 리스크가 줄어들기 때문에 PF 보증료도 할인된다.
반대로 PF 대출 땐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다.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금융회사가 PF 대출에 대해 적립해야하는 자본금·충당금 비율을 높게 적용하는 식이다. 상호금융이나 새마을금고와 같이 리스크 관리체계가 부족한 업권은 저축은행업권과 같이 사업비 대비 자기자본비율 요건 도입을 검토한다.
정부는 기업대출보다 연체율이 높은 PF 대출의 특성을 감안해 금융업권별 위험가중치, 충당금 규제도 강화할 예정이다. 부동산 PF에 대한 거액신용공여 한도 규제를 필요한 업권에 마련하는 동시에 업권별 부동산 PF 익스포져에 대한 한도규제를 정비한다.
PF 대출 때 이뤄지는 사업성 평가도 강화한다. 그간 의무가 아니었던 평가기관의 사업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기준과 절차도 마련한다. 민간에서 사업성 평가를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전문평가기관 인증 제도도 도입한다.
PF 사업 과정에서 ‘책임준공’이란 이름으로 시공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해온 사업 리스크 관행도 개선된다. 그간 금융사는 대출 때 리스크 완화를 목적으로 시공사에게 책임준공과 채무인수 등 신용보강을 요구했는데, 앞으로는 사업 리스크를 금융사와 시행사, 시공사가 공평하게 나누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국토부와 금융당국, 시행·건설·금융업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책임준공 TF’가 구성돼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 시공사의 귀책이 아닌 천재지변 상황 등에서도 책임준공 의무만 강조해온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건설업계가 요구해온 PF 수수료 관행도 개선될 예정이다. PF 수수료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업계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PF 수수료 개선 TF’를 구성해 수수료 부과 원칙을 명확하게 하고 차주에 대한 정보제공 절차도 개선한다.
신탁사 역시 책임범위와 기준을 표준화해 건전성 관리기준을 개선한다. 구체적으로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의 업무처리 기준을 마련하고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 정비, 자기자본 대비 토지신탁 한도 도입 등이 거론된다.
업계의 95%가 영세 업체로 구성된 한국의 개발업계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청사진도 마련됐다. 국내 개발업계는 대부분 개발과 분양만 수행해 경기 변화 등에 따라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불가능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개발업체처럼 임대 운영 기능을 적극 육성해 공실 등 비효율적 운영은 줄이고 개발업계의 안정적인 성장도 함께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개발업체가 임대 운영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안정적 자기자본을 갖춘 리츠에 입지가 우수한 공공택지 매입 우선권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수도권 등 우량 용지를 리츠에 우선 공급해 지역 내 랜드마크 상업시설 개발을 지원하고 헬스케어리츠 등 특화형 개발을 유도한다. 필요한 경우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이 지분출자로 참여해 사업 안정성 확보를 지원한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운영 노하우를 갖춘 전문 디벨로퍼를 육성해 부동산 개발시장의 체질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우수한 개발업체를 장려하기 위해 건설사와 같이 수행능력 평가 지표도 개발한다. 건설사의 경우, 시공능력평가 등을 바탕으로 사업 수행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데, 시행 역시 표준화된 평가 제도를 도입해 투자 유치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수익만을 쫓는 단기·영세한 시행 형태에서 개발과 운영, 금융까지 가능한 종합부동산회사를 육성하는 게 목표”라며 “리츠를 활성화해 우량 사업엔 국민 참여 기회도 제공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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