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설움 위로받는다고 집이 생기나요?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2024-11-18 08:20   수정 2024-11-18 08:21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대표되는 위로 산업이 한국 사회 전방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부족한 것은 게을렀기 때문이라며 채찍질하는 자기 계발 산업이 번창한 데 따른 반작용 측면도 있지만, 어느덧 안정적인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입니다.

위로 산업은 번아웃에 빠지는 개인이 늘어나면서 등장했습니다. 당신이 부족한 이유는 사회와 구조의 문제이지 당신 탓이 아니라고 속삭입니다. 솔깃한 사탕발림과 따뜻한 공감은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위로 산업은 괴로움이나 슬픔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활동으로 재화를 창출합니다.

위로 산업의 근간에는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흐름이 존재합니다. 공감하지 못하고 대화를 나눌 대상도 마땅치 않으니 산업의 영역이 생긴 겁니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솔로 문화의 확산은 위로 산업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전국의 1인 가구가 1000만 가구를 넘어섰습니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0%를 훌쩍 넘습니다. 연령대별로는 60대의 1인 가구가 가장 많지만 30대와 50대의 1인 가구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만큼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1인 가구는 일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50년에는 일본의 절반을 넘는 가구가 1인 가구로 재편될 것으로 예측하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위로 산업은 미래에도 튼튼한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부동산 부문에서도 위로 산업이 득세를 하는 중입니다. 자산관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집 마련 부문에서 위로 산업은 노력이 아닌 무기력함을 전파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집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사회의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MZ세대는 집값이 높아서 더 이상 집을 마련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을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이란 지표로 뒷받침하곤 하는데, 50년 전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당시에도 평균소득으로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30년이나 걸린다고 이야기했는데 현재도 PIR은 비슷한 수준입니다. 집값은 당시와 비교해 많이 올랐지만, 소득 또한 높아졌기 때문에 PIR은 거의 같은 수치로 도출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2015년에서 2023년까지 우리나라 PIR은 15% 하락했습니다. 이는 회원국 중 가장 낮게 오른 나라로 손에 꼽히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평균 소득으로 서울 아파트를 비교하는 등 비교 대상을 잘못 설정해 집값이 과도하게 높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위로 산업을 팔기 위한 선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도 최고가 아파트가 평당 3억원이 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위로 산업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주택가격 폭락을 주장하는 유튜버들은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놓친 무주택자들에게 위로를 선사합니다. 나라가 망한 IMF 상황에서도 주택가격 하락 폭은 20%대에 그쳤는데, 이들은 50% 폭락을 주장합니다. 그 정도 하락을 이야기해야 위로를 원하는 무주택 구독자들이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의 원리로 움직이는 재화입니다. 부동산 위로 산업 종사자들은 무주택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규제하면 가격이 오르고, 실물자산은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이 있다'는 경제학의 기초적인 이론과 싸우고 있습니다.

함부로 위로하려 들지도 않아야 하지만, 쉽게 위로 당하지 않는 것 또한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우리들이 갖춰야 할 자세입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먼저 위로 산업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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