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화기구(ISO)가 11월 14일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구현 원칙(IWA 48)을 공개했다. 기업이 ESG에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공개된 원칙은 기업이 ESG의 복잡성을 해결하고, 공시 요건을 준수하며, 지속가능성 활동을 정확히 측정·보고·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ISO는 다국적기업, 중소기업 외에도 ESG 컨설턴트, 학계, 연구 기관, NGO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조직이 ESG 보고의 일관성과 비교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IWA 48을 활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조직문화에 ESG를 녹여내는 데 어려움을 겪어온 중소기업이 이를 유용하게 활용할 것으로 본다.
새롭게 발표된 IWA 48 공식 명칭은 ‘ESG 원칙 구현을 위한 지침(프레임워크)’으로, 70쪽에 달하는 지침서 형태로 제공된다. 지침은 환경적 영향(탄소배출량, 폐기물관리), 사회적 요소(다양성, 인권), 지배구조 관행(투명성, 규제 준수) 등을 포괄한다. 조직이 지속가능성 목표를 조직문화에 통합할 수 있는 ESG 성숙도 평가 등 정보도 제공한다.
지침서, 핵심 ESG 성과지표 선정·관리 등 내용 담겨
구체적으로 지침서는 ESG 구현을 위한 포괄적 원칙, 지속가능성 위험과 기회 식별, 책임성과 투명성 강화, 이해관계자 식별, 중요성 평가, 핵심 ESG 성과지표 선정과 관리, 표준화된 방식으로 성과지표 공시, 공시 내용 보증 및 적합성 평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공시와 관련해 ISO는 IWA 48이 독립적 지침이 아니라 기존 국제지속가능성 공시기준과의 상호운용성을 고려해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국제회계기준재단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IFRS S), EU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과 일정 부분 호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IWA 48은 양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과 구조적으로 호환하는 측면도 있다. IFRS S와 ESRS는 지배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와 목표의 4개 주요 공시 구조(일명 TCFD 구조)를 갖는다. IWA 48도 ESG 각 요소에 대해 위험과 기회 식별, 영향 평가, 실행 전략 수립, 공시 단계를 거쳐 ESG 경영을 구현하는 틀을 제시한다. 지배구조 부문을 제외하면 사실상 동일한 구조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IWA 48은 ESG 구현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공시 양식과 다른 부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조직이 중요성 평가를 하는 데 ESG 성숙도 평가를 반영하도록 한다. 조직의 ESG 성숙도를 최소 수준, 준수, 개발, 가치 중심의 4단계로 나누고 성숙도에 따라 지속가능성 지표를 산정해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ESG 성숙도 고려한 경영 개선 추구
예를 들어, 환경 부문에서는 온실가스배출량, 물 소비량, 폐기물 배출, 에너지 소비 등을 우선 관리하다가 조직이 성숙하면 지속가능한 공급망 구축을 위해 투입한 예산, 조직의 생물다양성 개선에 사용되는 지출 자금, 과학 기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채택하는 공급업체 비율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또 지침은 기업의 ESG 각 항목을 개선할 때 필요한 고려사항과 조치사항에 대해서도 예시 형태로 친절히 설명해준다. 지침은 투자자뿐 아니라 다수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수월히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대다수 지속가능성 성과를 수치화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에 정보 보증 및 적합성 평가와 관련해서도 부록으로 다루고 있다. 독립성과 객관성, 엄격성, 명확한 의사소통 방식, 검증 참여자의 능력, 비밀 유지 등을 검증 원칙으로 제시한다. 또 ESG 공시와 관련해 조직의 필요에 따라 직접 정보를 검증하거나 제3자 검증을 진행하는 방법도 담고 있다.
세르히오 무히카 ISO 사무총장은 “이 지침은 조직, 정부, 투자자, 소비자 모두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지속가능한 ESG 문화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한 뒤 “모든 규모와 분야의 조직에 적용 가능하며, 특히 중소기업(SME)과 개발도상국 조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잔 테일러 마틴 영국표준협회(BSI) 최고경영자는 “이 지침은 조직이 배출 감축, 생물다양성 보호, 녹색 투자 활성화, 포용성 증진 등 실질적 변화를 추진하도록 돕고, 궁극적으로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향한 진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IWA 48은 BSI, 캐나다표준협회(SCC), 브라질기술표준협회(ABNT) 등 여러 국가의 표준기구가 협력했으며, 총 128개국에서 1900명 이상 산업 전문가가 참여했다.
CSR에서 ESG로, ISO 26000도 수용
IWA 48은 ISO가 2010년 공개한 조직의 사회적책임에 대한 국제표준(ISO 26000)보다 범용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IWA 48이 ESG 공시라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됨과 동시에 ISO 26000의 유산을 일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ISO 26000이 이해관계자 식별과 이들의 참여를 통해 조직, 특히 기업의 사회적책임 활동을 개선하는 데 유용한 구조를 갖췄다면, IWA 48은 조직이 중요성 평가를 통해 투자자뿐 아니라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할 주제를 직접 선정해 관리할 것을 제안한다.
또 ISO 26000은 사회적책임 활동 범위를 지배구조,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 운영 관행, 소비자, 지역사회 등으로 직접 나열했으나 IWA 48은 ESG 경영활동 범주에 대한 제약을 두지 않으며, ISO가 보유한 광범위한 표준과 지침을 IWA 48과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구조화했다. 예를 들어 물관리는 ISO 46001, 사회적책임 부문은 ISO 26000을 참조하는 등 식이다.
한편 ISO 관계자는 “IWA는 긴급한 시장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지침 등을 의미한다”며 “추후 평가 및 피드백을 기반으로 PAS(공개 사양), TS(기술 사양), 또는 ISO 표준 같은 공식 문서로 발전할 수 있는 표준 번호”라고 설명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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