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위치한 현대미국디자인센터 내 CMF(칼라·소재·마감) 연구실에 들어서니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차량 색상이나 소재를 연구하는 팀이다 보니 각종 물건들이 주는 색상이나 분위기 등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연구실 내 중앙에 위치한 널찍한 책상 하나였다. 그 위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소재들로 빼곡했는데 조금 특별했다. 모두 리사이클링(재활용) 등으로 만들어진 친환경 소재였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놓인 평범해 보였던 가죽 패드는 멕시코에서 폐기되는 선인장을 건조해 만들어진 친환경 리사이클 소재였다. 가죽은 자동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소재다. 그간 주로 사용했던 동물로부터 얻는 가죽 대신 윤리적이고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소재를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옥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 페인트도 눈길이 갔다. 에린 김 현대미국디자인센터 CMF 팀장은 "(친환경 소재 사용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업계가 최근 탄소 감축 목표에 따라 자동차에 사용되는 소재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대미국디자인센터에서 본 소재 중 일부는 현대차에 실제 적용된 것도 있다. 아이오닉5의 경우 도어 트림이나 운전석 모듈 마감에 유채꽃과 옥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 오일 성분이 함유된 페인트가 사용됐다. 실내 바닥 매트는 해양에서 수거된 폐그물로 만들어져 눈길을 끌었다.
특히 친환경 소재 사용은 친환경차를 대표하는 전기차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된다. 기아 EV6의 경우에도 아마 씨앗 추출물을 활용해 친환경 공정을 거친 나파 가죽 시트를 도입, 환경 오염을 줄였다. 도어 포켓과 플로어 매트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소재로 제작했다. EV6 한 대에 적용된 친환경 소재는 500㎖ 페트병 약 75개에 해당한다는 설명. EV9은 지속 가능성 전략에 따라 동물 가죽 소재를 모두 대체한 바 있다.
수입차 브랜드들도 친환경 소재 사용에 적극적이다. BMW는 뉴 5시리즈 실내에 5시리즈 사상 최초로 동물 가죽이 아닌 완전 비건 소재를 적용했다. BMW그룹 산하 브랜드 미니(MINI)는 동물 유래 소재를 1% 미만으로 낮추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볼보 전기 SUV C40 리차지의 경우 브랜드 최초로 '레더 프리' 소재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신차 공개 등 기자 간담회에서도 친환경 기조가 눈에 띈다. 볼보코리아가 대표적이다. 이달 14일 열린 볼보코리아 소규모 시승 간담회장의 모든 물건은 '노 플라스틱'이었다. 페트병 물병 대신 유리병 물병,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명찰 대신, 폐종이로 만들어진 재활용 명찰을 사용했다. 볼보코리아는 볼보자동차 본사의 지침으로 모든 전시장이나 서비스 센터를 비롯한 기자 간담회에서도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달 열린 현대차 수소전기 콘셉트카 공개 기자간담회에서도 종이 명패가 사용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트렌드에 대해 "친환경이라고 해서 기존 소재보다 저렴한 게 아니다. 마감이 특별히 좋은 편도 아니고 소비자들 요구가 많은 편도 아니다"라면서도 "탄소 감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자동차 업계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LA=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