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ETF로 33% 수익률’…퇴직연금 고수의 투자 포트폴리오

입력 2024-12-02 09:45   수정 2024-12-02 09:47

[커버스토리] 퇴직연금 고수 되기



퇴직연금은 ‘복리의 마법’이 가장 잘 작동하는 금융 시장이다. 가령 연평균 5% 수익률로 월 75만 원씩 투자하면 30년 후 6억1414만 원으로 불어난다. 여기서 연평균 수익률이 1%포인트만 높아져도 1억2050만 원이 더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복리로 늘어나는 수익률인 만큼 조금이라도 일찍 퇴직연금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최근 10년간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연평균 8~10%에 달해 50만 명에 달하는 직장인이 연금 백만장자로 은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퇴직연금 고수들은 주로 미국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에 집중 투자해 두 자릿수에 달하는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연금 백만장자 만드는 '복리의 마법'

미래에셋증권의 퇴직연금(DC·IRP) 가입자 중 최근 1년간(2023년 11월~2024년 10월) 수익률 상위 10%의 투자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톱10’ ETF는 모두 미국 주식 관련 상품이었다. 평균 수익률은 33.61%에 달했다. 수익률 1위는 96.97%에 이르는 수익을 냈다. 1년 만에 퇴직연금을 2배로 불린 셈이다. 수익률 상위 10% 중 가장 낮은 수익률을 낸 가입자의 수익률도 24.55%였다.




퇴직연금 고수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상품은 미국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TIGER 미국나스닥100’이었다. 미국 증시가 급등하면서 1년간 수익률이 42.15%에 이른다. 이외에도 높은 수익률을 낸 'TIGER 미국S&P500'(38.95%), 'KODEX 미국나스닥100TR'(41.65%) 등 미국 지수형 상품에 투자가 집중됐다.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61.57%)와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55.66%) 등 미국 기술주 ETF도 고수들의 선택을 받았다.

국내 주식형 ETF는 점점 연금 고수들의 보유 상위 종목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2022년에는 연간 수익률 상위 10%의 보유 톱10 종목 가운데 'TIGER 여행레저'(5위), 'KODEX 보험'(10위) 등 국내 주식형 ETF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다가 지난해 'TIGER 2차전지테마'(8위) 한 개로 줄더니 최근에는 국내 주식형 ETF가 목록에서 아예 사라졌다.

미국 S&P500 지수는 지난해 말 기준 최근 10년간 연평균 13% 상승하며 우상향했다. 이에 미국 대표 지수형 ETF와 미국 배당형 ETF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美 고수들은 TDF로 자산 배분

'연금 백만장자'의 나라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타깃데이트펀드(TDF)가 대표적인 퇴직연금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배분해주는 데다 수익률도 높아 퇴직연금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미국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미국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401K 가입자 중 TDF 투자자는 2022년 말 기준 68%에 달했다. 401K 자산에서 TDF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22%에서 올해 41%까지 늘었다. 미국 자산운용사 뱅가드에 따르면 뱅가드 고객의 401K 디폴트옵션 98%는 TDF로 설정돼 있다. 대부분 직장인의 노후를 TDF가 책임질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셈이다.

TDF는 가입자가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기존 연금 상품과 달리 은퇴 시점을 정해주면 자동 자산 배분 프로그램이 자산별 비중을 조정해준다. 청년기에는 성장주와 고수익 채권 등에 자산을 집중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은퇴 시기가 가까워지면 배당주와 국채 비중을 높여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식이다.

높은 주식 비중으로 인한 높은 수익률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운용자산 1조6300억 달러(약 2278조 원)의 미국 3대 TDF 운용사인 티로프라이스의 2050 TDF(은퇴 시점을 2050년으로 잡은 TDF)를 분석한 결과 주식 비중은 90%를 웃돌았다. 미국 주식 65.51%, 해외 주식(미국 이외) 30.63%로 총 주식 비중이 96.14%다. 이 가운데 기술주 비중도 22.79%에 달했다. 나머지는 미국 채권과 해외 채권, 현금 등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됐다.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9.4%에 달했으며 올해 들어 수익률도 14.6%에 이른다.

수딥토 바네르지 티로프라이스 은퇴 연구 디렉터는 "퇴직연금을 직접 운용하는 투자자들과 달리 TDF 투자자들은 자산이 적절하게 배분돼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 TDF 시장도 급성장

국내에서도 TDF가 높은 수익률을 내며 대표적인 퇴직연금 투자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1년간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도 20%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리자 연금 계좌를 통해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수익률 상위권에 오른 TDF들은 주로 미국 증시를 기반으로 효율적인 자산 배분을 통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TDF 설정액은 지난 11월 15일 기준 10조3255억 원으로 연초(8조8146억 원) 대비 17.1% 증가했다. 전체 TDF 상품 중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낸 상품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 TDF알아서ETF포커스'다. 2030(23.29%), 2040(28.99%), 2050(30.12%) 등 3개 빈티지(TDF의 목표 은퇴 시점)에서 1위에 올랐다. '교보악사평생든든TDF'와 'KCGI 프리덤TDF', '키움키워드림TDF', '미래에셋자산배분TDF' 등도 주요 빈티지에서 수익률 상위권을 차지했다.

TDF가 좋은 성적을 낸 비결은 성장률이 높은 자산군 선별, 변동성을 줄이는 자산 배분 등에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각 자산의 장기 기대수익률, 상관관계 등을 분석하는 모델인 ‘장기 자본시장 가정’을 개발해 이에 맞는 ETF를 편입하는 패시브 전략을 취했다.

박희운 한국투자신탁운용 솔루션본부 전무는 “주식은 미국 성장주 ETF에 환노출로 투자하고 채권은 국내 채권을 편입한다”며 “이 두 자산군이 서로 상관관계가 작고 수익률 그래프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시장 변동성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TDF를 잘 선택하기 위해서는 샤프지수(투자 위험 대비 수익률)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기 투자 상품인 만큼 투자 시점이나 대외 변수에 따른 변동성이 작으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샤프지수가 높을수록 수익률 대비 변동성이 낮다는 의미다. 최근 1년간 샤프지수를 비교한 결과 2030, 2050 빈티지에서는 '마이다스기본TDF'가 각각 3.3과 3.29으로 샤프지수가 가장 높았다. 나머지 빈티지에서는 '한국투자 TDF알아서ETF포커스'의 샤프지수가 3.3에 달해 가장 높았다.

퇴직연금, 넣기만 하면 최대 16.5% 수익률

퇴직연금 고수들은 높은 수익률과 함께 세제 혜택도 챙기고 있다. 정부는 세액공제를 통해 개인연금 계좌 납입액의 최대 16.5%(148만5000원)을 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의 노후 준비를 위해 연금 투자 혜택을 확대하는 추세다. 지난해부터 세액공제 한도는 700만 원에서 900만 원으로 대폭 올렸다.

지난해 말 기준 연금저축 계약 건수는 915만 건으로 2년 만에 약 200만 건 증가했다. 연금 투자가 '나만 빼고 다 받는' 재테크 '필수템'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테크를 시작하고 바로 투자에 뛰어들기 앞서 퇴직연금 투자를 통해 이 같은 확실한 수익부터 챙기라고 조언한다.

연금 계좌는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두 계좌를 합해 1년에 1800만 원까지 넣을 수 있고, 이 가운데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연 급여 5500만 원 이하이면 16.5%, 5500만 원 초과면 13.2% 공제 혜택이 있다. 900만 원을 납입했다면 각각 148만5000원, 118만8000원을 연말정산에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세액공제 한도(900만 원)을 꽉 채워넣어 최대 혜택을 보고 싶다면 연금저축 600만 원, IRP 300만 원에 넣는 게 좋다. 연금저축은 600만 원, IRP는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한데(두 계좌 합산 최대 900만 원), 연금저축 계좌를 먼저 채우고 남은 300만 원을 IRP에 납입하는 것이다. 매달 연금저축에 50만 원, IRP에 25만 원씩 넣어둔다고 기억하면 쉽다.

연금저축에 우선 납입하는 것은 두 계좌 간 투자 자산 비중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금저축은 주식형 ETF 등 위험 상품에 자산의 100%를 투자할 수 있다. 반면 IRP는 위험자산 비중이 70%로 제한된다. 연금저축이 좀 더 공격적인 운용을 할 수는 여지가 많은 것이다. 대신 IRP는 ETF뿐만 아니라 주식연계파생결합사채(ELB), 리츠, 예금 등 투자 가능한 상품군이 다양하다.

또 연금저축은 IRP보다 중도인출이 용이하다. 연금투자는 지금 저축한 돈을 55세 이후에 돌려받는 계좌인데 사회초년생일수록 결혼, 출산, 등 목돈이 들어가는 시기가 잦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중도인출을 해야 할 수 있다. 연금저축의 경우 세액공제 받은 금액에 대해 고율의 기타소득세(16.5%)를 내야 하지만 중도인출이 가능하다. IRP는 개인회생·파산, 요양, 천재지변, 주택 구입·전세보증금 등의 경우에만 인출할 수 있다.

연금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과세이연'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상장된 해외 주식형 ETF는 분배금과 매매차익에 배당소득세(15.4%)가 부과된다. 하지만 연금 투자 시 과세가 이연돼 세금으로 내야 할 돈까지 계속 투자로 굴릴 수 있고, 55세 이후 수령받게 되면 3.3~5.5%의 낮은 수준의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퇴직연금 예·적금에 방치하지 말아야

정부의 강력한 세제 혜택과 다양한 퇴직연금 투자 상품 출시에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퇴직연금 투자에 관심이 없어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퇴직연금을 방치하면 은퇴 시기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노후 자금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사업자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퇴직연금 방치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도입됐지만, 오히려 원리금 보장형 상품 비중이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78%는 적립금을 연 3%대 예·적금 상품에 방치하고 있었다. 디폴트옵션 가입자들이 사전지정 대상 상품에 포함된 ‘초저위험’(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몰리면서다.

올 1분기 기준 DC형과 IRP의 적립금 184조1936억 원 중 144조2942억 원(78.3%)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들어 있었다. 1년 전인 지난해 1분기 77.8%였던 원리금 보장형 상품 비중이 디폴트옵션 도입에도 더 확대된 것이다.

DC형만 놓고 보면 이런 추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DC형은 올 1분기 적립금 100조4653억 원으로 처음으로 100조 원대를 돌파했다. 하지만 시장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 비중은 85.2%로, 1년 전(81.6%)보다 약 4%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당초 디폴트옵션이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와는 정반대 결과다. 지난해 7월 정부는 DC형과 IRP 가입자 대상으로 디폴트옵션 가입을 의무화했다. 디폴트옵션은 미리 정해 놓은 곳에 적립금이 자동으로 투자되게 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계좌 적립금에 아무런 운용 지시 없이 2주가 지나면 사전에 지정해 놓은 투자 상품에 투자된다. 퇴직연금이 수익률 연 1~3%대에 머무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방치되는 것을 막고 노후 자산 증식을 돕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디폴트옵션 상품에 들어온 적립금 12조5520억 원 중 89%가 예금 등 원금 보장형 상품에 투자하는 ‘초저위험’ 상품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제도가 안착한 미국 영국 등은 한국과 달리 예·적금 상품을 고를 수 없다”며 “두 나라의 연금 수익률이 연 8~9%에 달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맹진규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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