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이 10억원 미만으로 아주 크진 않지만 여러 측면에서 뒷맛이 쓰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하청업체가 원청을 믿고 넘긴 기술자료를 경쟁사에 무단 유출한 행위는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는 상식 밖의 범죄다. 귀뚜라미와 거래하기 위해 제품 구조, 특성, 사양, 도면 등을 제출한 납품회사는 졸지에 핵심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 유출 상대방이 호시탐탐 한국의 기술 약탈을 노리는 중국 기업이라는 점도 아찔하다.
부당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난 점이 실망을 더한다. 귀뚜라미는 2020~2021년 중국으로의 센서기술 유출에 이어, 2022년에도 전동기 납품업체의 기술을 국내 다른 경쟁사에 넘겼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중국 기업이 센서 납품에 성공한 것과 달리 전동기 기술을 전달받은 국내 기업은 제품 생산에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술유출 피해 기업이 생존을 위협받게 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귀뚜라미는 기술혁신에 기초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종합에너지회사다. 그럼에도 기술·노하우 보호에 무심했다. 기술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대통령령에서 정한 요구 목적, 권리귀속 관계, 대가 등을 납품회사와 협의하지도 않았다. 기술 하나만 믿고 고군분투 중인 중소기업들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새삼 놀라게 된다.
원가 절감을 위한 기업의 노력은 당연하고 권장할 일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원청사와 하청사 모두 효율을 제고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 탈취를 통한 원가 절감은 역동적 시장경제를 붕괴시키는 범법일 뿐이다. 건전한 기술 생태계 보호를 위해 검찰이 신속 수사로 철저히 진상을 밝히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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