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는 인간을 복제한 인공지능(AI) 인조인간 ‘리플리컨트’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공상과학(SF) 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블레이드 러너’(1982년) 못지않은 완성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빌뇌브 감독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리플리컨트를 통해 관객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영화는 자신도 리플리컨트이면서 인간 통제를 벗어난 동족을 찾아내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리플리컨트는 원칙적으로 인간을 위해 작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됐다. 하지만 수많은 리플리컨트가 이 원칙에 반해 행동한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직업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간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던 주인공 K도 인간에게 반기를 든다.
주인공 시점을 따라가는 영화 특성상 리플리컨트 입장에 몰입하면서 보게 된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인간 입장에서 영화를 생각하면 내용이 달리 보인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은 인간 통제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 대대적인 전쟁까지 불사한다. 리플리컨트 번식도 인간으로선 계획에 없던 일이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한다.
기술을 오용하는 악한 인간이 문제일 뿐 기술 자체는 잘못이 없다는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기술 스스로 의지를 가질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글로벌인재포럼 2024’에서 “안전과 윤리 문제에 관한 고민 없이 AI 기술 경쟁이 과열되면서 인간에게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인류는 AI 때문에 멸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으로 진화하면 AI가 ‘권력을 얻겠다’ 같은 목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 초지능이 다른 초지능은 물론 스스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인간조차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AI 개발을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이미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기술이 됐다. 힌턴 교수는 정부와 국제단체가 강제력을 갖추고 윤리·안전 규범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간보다 인간다운 AI를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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