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민간 철강회사인 유럽의 아르셀로미탈이 조단위의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사실상 중단하기로 했다. 저가 중국산 철강 제품의 범람으로 실적이 악화되자 당장의 생존에 집중하기로 했다. 중국산 제품에 맞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철강회사들 역시 친환경 전환 속도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아르셀로미탈 최고경영진은 회사가 계획하고 있던 수소환원제철소 설치 및 전기로 확대 등의 프로젝트를 당분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아르셀로미탈은 노조 등과의 협의 후 2025년 1분기에 최종 결정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아르셀로미탈은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다국적 회사로 지난해에만 6852만t의 철강을 생산했다. 중국 국영기업인 바오우철강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 생산량이다.
아르셀로미탈은 앞서 2021년 10억 유로(1조4722억원) 이상을 투자해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소, 전기를 이용해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 등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기술의 단계적 상용화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0%이상 줄이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투자계획 발표 당시 23조원이 넘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3조원대로 줄어들면서,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한 프로젝트를 더이상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회사는 철강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탄소포집기술(CCU) 투자도 중단하기로 했다.
아르셀로미탈은 고강도 관세 조치로 저가 철강 수입을 막지않는 이상 유럽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프로젝트는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유럽의회 등에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중국은 바오우철강(1억30077만) 등을 포함해 10억1900만t의 철강을 생산했다. 전세계 철강량(18억8820만)의 54% 가량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중국산 저가공세에 신음하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남의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스코는 현재 포항제철소에 수소환원제철 관련 시험설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인 수소환원제철소 설치 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2030년까지 기술 개발을 마치고 이후 단계적으로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실적이 계속해서 악화되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다. 포스코는 최근 중국의 과잉 공급을 이기지 못하고 제1선재 공장도 폐쇄했다.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2021년(6조6500억원), 2022년(2조2950억원), 2023년(2조830억원), 2024년(1조6360억원 추정)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탄소중립 기술 상용화 이후도 문제다. 전통 고로방식에 비해 생산비가 30% 이상 비싼만큼 중국과의 가격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탄소중립기술에 대한 초기 투자 단계인 현대제철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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