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겨울 맞은 우크라戰…종전 향한 '처절한 전투'가 다가온다

입력 2024-11-20 18:14   수정 2024-11-21 00:27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거주하는 바실리나 네레드(23)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세 번째 겨울을 맞았다. 최근 그가 사는 아파트는 하루에도 수십 번 불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한다. 인근 에너지 인프라가 폭격당해 전기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네레드는 한국경제신문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되찾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3년째 이어진 전쟁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지쳐가고 있다. 최근 키이우 국제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71~73%를 유지하던 ‘필요한 만큼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지난달 63%로 비율이 뚝 떨어졌다. 전쟁을 피부로 느끼는 동부에서는 같은 응답 비율이 70%에서 38%로 반토막 났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시간은 우크라이나 편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전쟁은 끝날 때 치열해진다


20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전날 발발 1000일을 맞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중단을 원하는 우크라이나 안팎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6일 “내년에는 외교적 수단을 통해 러시아와의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임 당일 종전’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윌 임기를 시작하며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종전의 중요 쟁점인 영토 문제를 두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5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한 통화에서 “(협상은) 새로운 영토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 과정에서 점령한 우크라이나 땅을 자국 영토로 인정해야 휴전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의 평화 조건은 자국 영토의 완전한 복원과 러시아군의 철수다. 하지만 동맹국 사이에서도 이 같은 조건에 대해 회의론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인정하는 협상안은 과거 금기시됐지만 최근 이 방안을 지지하는 이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의 전폭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은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이어 한반도 외 지역에서 사용을 금지한 대인지뢰까지 공급하기로 했다. 러시아 역시 핵교리를 개정하며 우크라이나를 향한 핵 공격 가능성을 열어뒀다.

역사적으로 전투는 종전을 앞두고 치열해지는 사례가 많았다. 베트남전 종전을 한 달 앞둔 1972년 크리스마스 연휴 미국은 북베트남을 11일 연속 폭격했다. 6·25전쟁 끝 무렵인 1953년 6월 강원 철원에서 한국군과 유엔군, 중공군 등 40만여 명이 동원된 금성 전투가 벌어졌다. 김철민 한국외국어대 동유럽학대학 교수는 “남북이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 휴전선을 긋기 위해 싸웠듯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 가장 처절한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완전한 안전 보장 원하는 우크라

양국이 종전 협상에 들어갔을 때 최대 쟁점은 NATO 가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신청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유럽과 자국 사이에 있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면 순식간에 완충 지역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NATO는 1인치도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스스로 어겼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재침공을 막기 위한 카드로 NATO 가입을 요구한다. 러시아는 2014년 ‘민스크 협정’을 맺었지만 이를 위반하고 8년 만에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공했다. 민스크 협정은 2014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원을 받는 반군 간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양국이 체결한 협정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NATO 가입이 무산되면 핵 무력을 갖추겠다”고 공언할 만큼 자국을 지킬 수단이 절실하다. 서방의 재래식 무기 지원,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최고의 안전 보장 방안은 NATO 가입이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그에 준하는 안전 보장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졸속 종전은 동북아시아 평화까지 위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은 2년을 넘긴 6·25전쟁 휴전 협상과 달리 단기간에 끝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취임은 종전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김 교수는 “1년 반 이상 교착 상태였던 6·25전쟁 휴전 협상이 급물살을 탄 것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의 사망이 계기”라며 “내년 1월 트럼프가 취임한 후 이르면 6개월 안에 협상이 끝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국제 질서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급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국가의 동맹을 통해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를 제압하고자 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개별 국가와의 ‘거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다만 종전 협상이 트럼프 당선인의 압박 속에 졸속 처리되면 또 다른 권위주의 세력의 도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원장은 “미국이 러시아의 종전 협상안을 쉽게 수용한다면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자신의 힘으로 대만을 확보하고 ‘러시아도 똑같이 하지 않았느냐’고 우기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엽/임다연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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