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 상장사 5곳 중 1곳은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되는 이른바 ‘좀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존속 여부가 불확실한데도 증시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연명하는 부실 상장사가 매년 수십 곳씩 늘어나며 코스닥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국경제신문이 코스닥시장 상장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1771개 기업 가운데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인 한계기업은 20.4%인 363개였다. 이자보상배율은 회사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영업이익)을 그해 갚아야 할 이자(이자 비용)로 나눈 것이다. 1배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조차 낼 수 없다는 의미다. 이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사실상 폐업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의미에서 좀비기업으로 분류한다.
산업 특성상 수년간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바이오와 제약, 의료기기 업종을 제외해도 한계기업 비중은 코스닥 상장사의 13.5%(239개)에 달했다.
코스닥지수는 올해 내내 주요국 증시 가운데 수익률 꼴찌를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낮은 상장 문턱을 넘어 신규 기업이 계속 유입됐지만 좀비기업 퇴출이 지연되며 시장 건전성과 신뢰도가 크게 하락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2021년 말 1532개였던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3년 새 15.6%(239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사가 9.8%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기간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동안 코스닥지수는 33% 추락했다.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매매만 정지된 채 상장사 신분을 유지하는 기업은 81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좀비기업은 코스닥시장의 대외 신뢰도를 깎아 먹고 소액주주의 피해를 키우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요건과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연내 발표할 계획이다.
상장사 20%가 한계기업…주주 눈치 보느라 '방치'
2021년 3648개이던 상장 종목은 올해 3287개로 9.8%(361개) 감소했다. 엄격한 상장사 관리를 통해 요건에 맞지 않는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2020년 6월 나스닥시장에서 퇴출당한 ‘중국판 스타벅스’ 루이싱커피다. 중국 전역에 수천 개 점포를 가지고 있어 성장성을 인정받았지만 매출 부풀리기 등 회계 조작 사실이 적발되면서 상폐됐다. 2022년 말 ‘나스닥 1호 상장 K바이오 기업’으로 나스닥시장에 입성한 피에이치파마는 최소 유통주식 수(100만 주)를 유지하지 못해 4개월 만에 상폐되는 굴욕을 겪었다.
반면 코스닥시장에선 올해 60개 기업이 새로 상장했지만 상폐된 기업은 19개에 불과했다. 이 중 6개 기업은 자발적으로 나갔다. 거래소 규정에 따라 상폐된 기업은 13개뿐이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신규 상장 기업은 69개에 달한 반면 상폐 종목은 14개에 불과했다. 3년째 번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기업이 239개(바이오 업종 제외)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적은 상폐 건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상폐 사유가 발생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거래만 정지된 채 시장에 남아 있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코스닥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된 기업은 총 81개다. 이 중 2년 이상 거래가 멈춘 기업은 13개다. 대표적 사례가 이큐셀이다. 2019년 감사보고서가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폐 사유가 발생했다. 2020년 3월 이후 4년8개월째 ‘식물 상장사’로 코스닥에 남아 있다. 2019년 8월 8만원에 달하던 주가는 3100원으로 떨어졌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했던 대산F&B는 2017년 이후 7년간 거래 정지가 반복됐다. 거래 기간보다 정지된 기간이 더 길다. 2017년 7월 정우현 전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되면서 거래가 정지된 이후 2020년 말 거래가 재개됐지만 지난 4월 감사의견 거절을 이유로 다시 거래가 정지됐다.
실적 부진으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워진 좀비기업은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손쉽게 조달하며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그만큼 시중에 주식 수는 늘어난다.
만성 적자로 자본잠식에 빠져 있는 한 상장사는 최근 주주총회를 통해 CB와 BW 발행 가능 한도를 각각 5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발행 주식 총수도 5000만 주에서 5억 주로 10배 늘렸다. 소액주주의 주식 가치가 크게 희석될 수밖에 없다. 주가는 3년 사이에 10분의 1 토막 났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질이 나쁜 주식이 너무 많이 공급되면서 코스닥시장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좀비기업을 제때 퇴출해 시장 건전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등은 연내 유가증권시장의 상장폐지 심사 기간을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시장 상장 폐지 절차는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할 계획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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