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현대자동차의 '밸류업'

입력 2024-11-21 17:39   수정 2024-11-22 00:08

돈도 사람도 기술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한국인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이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었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의 40%에 해당한다. 인재도 탈출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고급 인력 취업 이민 비자인 EB-1·2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5684명이었다. 석사 이상의 고급 인재들이다. KAIST 1년 졸업생(2870명)의 두 배 규모다.

사람도 돈도 떠나니 한국은 글로벌 증시 랠리에서 소외됐다. 급기야 케이뱅크 등 몇몇 기업은 국내 증시 상장을 포기했다. 야놀자, 토스 등 유망 기업은 미국 증시로 떠날 채비를 갖췄다.
증시 침체 결국 국민 부담
한국 증시가 이렇게 된 이유는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는 배당에 인색한 걸 지적하고, 다른 이는 경영 투명성이 떨어지는 상장사가 많다고 탓한다. 이유가 어떻든 문제는 증시 침체가 장기화하면 그 부담은 우리 기업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면 기업은 은행 대출에 매달려야 한다. 대출이 늘면 이자 부담이 커져 결국 재무 상태가 악화된다. 그렇게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다시 조달금리를 끌어올린다. 악순환 구조에 빠진다는 얘기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당수 기업이 정부 정책에 발맞춰 중간배당을 늘리고 배당 성향을 높이는 식으로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밸류업을 통해 주가가 올라도 투자자들이 떠나기는 마찬가지다. 이참에 보유 주식을 정리하고 수익률이 훨씬 높은 미국 증시로 떠나는 투자자가 한둘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도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한 기업 중 하나다. 지난 8월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내년부터 배당금을 25% 늘리고, 4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순이익의 35%를 주주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미래 대비가 진짜 밸류업
통 큰 주주가치 제고 조치인데, 시장의 환호는 이후 더 커졌다. 인도법인을 현지 증시에 상장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동맹을, 도요타와 수소 동맹을 맺고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하는 등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대형 이슈를 잇달아 터뜨렸기 때문이다. 이들 이슈의 공통점은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현대차가 꼼꼼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시장으로 성장할 인도에서 ‘국민 기업’이 되겠다는 것, GM과의 동맹으로 해외 공장을 새로 짓지 않고도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춘 것, 미래 에너지 패권을 잡기 위해 라이벌 도요타와도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대차 혁신의 정점은 CEO를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맡긴 것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 중 처음이다. “현대차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트럼프 2.0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경영 투명성은 물론 기업 문화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확 바뀔 것이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당장 현대차 주가는 증시 침체 탓에 기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금 내놓은 기업가치 제고 작업이 하나둘 현실이 되면 주가가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게 진정한 밸류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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