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 자리 잡은 ‘골드스타인하우스’.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자 이 지역 랜드마크로 꼽히는 대저택은 300여 명이 내지른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는 한 신사의 모습이 포착돼서다. 주인공은 지난 15일 현대자동차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사장) 겸 북미·중남미 법인장.
짙은 남색 재킷에 노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무뇨스 사장이 골드스타인하우스를 찾은 건 이날 세계 최초로 공개한 현대차의 첫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아이오닉 9’을 글로벌 기자들과 인플루언서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다. 무뇨스 사장에겐 CEO에 선임된 뒤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짧은 인사말을 끝낸 무뇨스 사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기자와 인플루언서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인사할 때는 반가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인 직원들을 마주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맞잡는 등 ‘한국식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행사장에 함께한 남미 기자는 무뇨스 사장에 대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무뇨스 사장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는 한 미국 기자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데다 상황 판단도 빠른 만큼 CEO 역할을 잘 수행해낼 것”이라며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1989년 푸조-시트로앵의 스페인 딜러로 자동차업계에 발을 들였다. 닛산에서 15년 동안 유럽·북미·중국법인을 이끌면서 카를로스 곤 당시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곤 회장의 오른팔’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다.
무뇨스 사장과 함께 일한 사람들은 그의 강점으로 ‘꼼꼼한 일 처리’를 꼽는다. 마케팅 계획을 세울 때나 판매전략을 짤 때 여러 시나리오를 빠짐없이 점검한다. 연봉 협상을 벌일 때 자신이 1년간 거둔 성과를 두툼한 파일로 준비할 정도로 치밀한 성격이다.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결단력’도 무뇨스 사장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2018년 3301억원 순손실을 낸 현대차 미국법인을 이듬해부터 맡아 지난해 2조7782억원 순이익으로 탈바꿈시킨 비결이기도 했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 미국법인의 살 길을 딜러 네트워크 강화와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 구축으로 잡고 하나씩 밀어붙였다. 본사 지원을 이끌어내 딜러망을 확충하고 딜러 인센티브도 높였다.
동시에 할인판매를 없애고 가솔린 세단 중심이던 미국 라인업을 SUV와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등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현대차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입혔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무뇨스 사장은 풍부한 글로벌 경험을 갖춘 검증된 리더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현대차를 이끌 적임자”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내년 1월부터 무뇨스 체제가 시동을 걸면 현대차에 엄청난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생산·판매 전략은 물론 기업문화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확 바뀔 가능성이 높아서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CEO가 운전대를 잡는 만큼 현대차에 상명하복 형태의 한국식 조직문화가 사라지고 토론문화가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송영찬 특파원/신정은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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