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력기기 관련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전력 확대 수혜를 받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전력망을 둘러싼 시대 변화상과 산업 사이클의 변화가 자리한다.
미국 인프라 교체와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수요 폭발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증가라는 3가지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국내 관련주 중 일진전기를 주목할 만하다고 보고 있다. 전력망 확대 수혜주일 뿐 아니라 친환경 전력망 구축을 위한 기술, 그리고 꾸준히 늘어나는 해외 매출 비중이 매력 포인트로 꼽힌다.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전력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ESG 투자자에게도 주요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전력 인프라가 뜨는 이유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0월 3일 15억 달러 규모의 신규 송배전망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기존 인프라 투자 법안인 인프라 투자법(IIJA)하에서 진행하는 두 번째 투자다. 미국 6개 주에 총 4개의 대규모 신규 전력망 프로젝트를 설치한다는 것이 골자다. 1600km가량 전력망이 포함된다. 일진전기 주가는 발표 이후 한 달간 30% 넘게 오르기도 했다.
전력망은 확장 사이클에 진입해 있다. 절대적 수요 증가 구간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사이클이 얼마나 큰 폭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여부다. 여기에서 투자 성패가 갈린다. 우선 살펴볼 문제는 미국발 호재다. 미국은 2022년 말부터 전력 정책을 지속했다.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에게 전력망 확대는 과제로 꼽힌다. 트럼프 당선인 취임 후 전력 인프라 구축 및 신규 발전원 확보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미국발 정책 호재 기대가 큰 이유다.
미국은 사실 전력망 확대가 시급한 과제다. 전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어서다. 전력망의 핵심인 변압기의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연일 최고점을 갈아치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10월 송전 및 특수 변압기 PPI는 433.253을 기록했고,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최근 3년 동안 상승폭이 커졌다. 배전 변압기 PPI도 마찬가지로 급증세다.
교체 수요만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물결, AI가 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략 사용량은 2022년 460TWh에서 2026년 1050TWh로 급증할 것이다. 생성형 AI는 전력 소모량이 많다. AI 시대에 안정적 전력망이 필수이며, 전력망 관련 기업이 AI 하드웨어 수혜주로 꼽히는 이유다. 생성형 AI로 인한 미국 내 전력 수요만 해도 지난해 3TWh에서 2030년 652TWh로 급증할 전망이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관련 투자 프로그램의 꾸준한 집행 및 여전히 남아 있는 신규 신재생발전설비의 대기열 규모를 감안 시 미국 시장에서의 수요는 단기간에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의 미국에 대한 대형 변압기 수출 중량 및 단가 또한 올해 들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1.2%, 14.1% 높다”고 설명했다.
일진전기의 차별점은
일진전기는 저압~초고압 전선을 비롯해 변압기 등 중전기기 그리고 전력시스템 구성을 위한 전력기기 등을 종합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1조2467억 원으로 상승했다. 영업이익도 608억 원으로, 전년 대비 92.9% 증가했다. 제조업임에도 매출 규모가 2019년 6000억 원대에서 5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나는 성장세를 보였다.
사업은 크게 전선 부문과 중전기 부문으로 나뉜다. 전선 부문은 초고압 케이블, 특수 전선, 접속재 등을 주로 생산한다. 친환경 PP 절연 케이블도 생산한다. 핵심 소재인 절연체를 기존 XLPE에서 친환경 소재인 PP로 전환한 제품이다. 지난 3분기 기준 매출 비중이 80%에 달한다.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건 중전기 부문의 성장이다. 중전기 부문은 지난 3분기 매출 비중이 20%가량이다. 하지만 3분기 기준 전체 수주 잔고의 63%가 중전기 부문이다. 국내가 20%, 해외가 80%로 압도적으로 해외 비중이 높다. 해외 수주 물량 중 36%는 지난해 11월 미국 동부 전력청으로부터 수주한 4300억 원 규모의 장기공급계약이다. 미국 비중은 최소 40% 이상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수주에 따른 매출 반영은 내년 2분기부터 순차적으로 반영될 전망이다.
중전기 부문의 주요 제품은 변압기, 차단기, 배전기기·수배전반, 송전금구 등이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를 최대 765kV/1000MVA까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다양한 특수 변압기를 고객 수요에 맞춰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일진전기의 강점으로 꼽힌다. 변압기 관련 투자도 늘리고 있다. 초고압 변압기의 신공장은 올해 안에 가동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증설 효과가 반영된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해외 변압기 신규 수주가 늘어나는 만큼 향후 판매량 증가에 따른 영업 레버리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주가 전망은
주가는 실적과 주가 이벤트 관점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적으로 보면, 내년도 호실적은 어느 정도 주가에 반영된 상황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내년도 일진전기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1조5195억 원, 804억 원으로 올해 전망치보다 22%, 32%씩 늘어날 전망이다. 실적 전망치가 계속 상향 조정되면서 밸류에이션 매력(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오히려 낮아졌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13배 수준으로, 1년 전 17배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이는 글로벌 경쟁업체 대비 낮은 수준이다. 예를 들어 성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중전기 부문 경쟁업체인 미국 이턴(Eaton)은 PER이 30배에 달한다. 프랑스의 슈나이더일렉트릭도 20배 중반에서 거래 중이다. 손현정 연구원은 “현재 주가 수준은 글로벌 경쟁사 대비 25% 할인이 적용돼 있다”며 “내년부터 높은 이익성장률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벤트 관점에서는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전력망 확대에 따른 투자계획 등이 발표될 수 있다. 한국의 전력기기 관련주는 직접적 수혜 대상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정책 이벤트로 주가 수급이 몰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진전기의 목표 주가 평균은 3만5600원이다.
고윤상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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