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산업 120년 역사상 최초의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원 이상) 의약품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인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올해 매출 1조원을 넘길 것이 확실시돼서다. 세계 제약·바이오 1, 2위 시장인 미국과 유럽을 발판으로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이 재조명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제약·바이오업계와 셀트리온 등에 따르면 지난 3분기까지 램시마 누적 매출은 9797억원이었다. 업계에서는 램시마 분기 매출이 3000억원 안팎인 것을 감안해 올해 램시마 전체 매출이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램시마는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이자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다. 2006년 셀트리온이 개발에 뛰어든 뒤 10여 년 만에 미국 허가 관문을 넘었다. 류머티즘 관절염 등의 치료에 쓰는 존슨앤드존슨의 오리지널 의약품 레미케이드는 연 매출 5조원의 블록버스터였으나 램시마 출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램시마는 출시한 지 불과 5년 만에 오리지널 의약품을 제치고 시장 1위에 올라섰다.
램시마의 성공은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경쟁을 촉발했다. 삼성이 먼저 뛰어들었고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가 속속 진출했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연구개발(R&D) 속도전을 펼쳐 한국을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최강자 자리에 올려놨다. 이들 쌍두마차가 신약 개발에 뛰어든 것도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램시마를 계기로 한국 제약·바이오 제품과 기술력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바이오 불모지 뛰어든 서정진…셀트리온, 번 돈으로 R&D 투자
셀트리온은 2006년 사업 방향을 과감히 틀어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존슨앤드존슨의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개발에 뛰어들었다. 2012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2013년 유럽 의약품청(EMA),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차례로 받아낸 램시마는 셀트리온 창립 22년 만에 ‘첫 국산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올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누적 매출 9797억원을 올리고, 연말 매출 1조원 돌파가 확실시되면서다.
1세대(2000년대) 바이오시밀러는 인슐린이나 백신 복제약에 가까웠다. 항체의약품은 더 정교한 단백질 분석·제조가 필요하다. 당연히 1세대 의약품보다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셀트리온은 이런 고가의 항체의약품을 효능은 동등하면서도 가격은 20~30%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로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셀트리온의 FDA 허가 이후 삼성바이오에피스, 화이자, 산도즈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레미케이드, 휴미라 등의 바이오시밀러는 램시마가 나온 이후인 2016년부터 하나둘씩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램시마는 국내에 신약 개발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제약·바이오 종주국으로 불리는 미국, 유럽에서 국산 약이 선전한다는 점 자체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단일 품목으로 매출 1조원을 넘겼다는 것은 셀트리온 회사뿐 아니라 한국 바이오산업에도 큰 이정표”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입지를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램시마의 성공을 밑거름 삼아 신약개발사로 변신한다.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이중항체 신약 개발에도 뛰어든 셀트리온은 내년 신약 4종의 임상을 시작한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주도권도 강화한다. 내년에만 5종의 바이오시밀러를 추가로 승인받을 예정이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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