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쾌활한 미소를 상상하며 밝은 마음으로 진행하려 했던 계획과 달리 현장 분위기는 꽤 무거웠다. 오 박사가 20대 때 처음 상담한 아동 사례를 설명하면서다. 그가 생생하게 폭력 피해 아동 상황을 설명하자, 잔인하고 처참한 장면들이 떠올려지면서 이내 숙연해졌다. 아동이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대상은 부모다. 분리됐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도 가정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전국 아동 학대 신고 접수 건수는 5만3932건으로, 전년 대비 27.6% 증가해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4만8522건으로 집계됐다. 다소 줄었다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학대 행위자는 부모가 85.9%로 압도적이다. 학대 장소도 가정에서 발생한 사례가 전체의 82.9%로 가장 높다. 학대 유형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정서 학대 1만1094건(43.1%), 신체 학대 4698건(18.3%), 방임 1979건(7.7%), 성 학대 585건(2.3%)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창을 받은 오랜 경력의 아동 학대 전문 상담원에게 애로사항을 물었다. 그는 “상담원을 오랫동안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답했다. 숭고한 일이라 시작했지만, 막상 학대 가정에 방문하면 문을 열어주지 않고 ‘반기지 않는 손님’ 취급을 받는다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 아동이 사망한 채 발견되면 죄책감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2019년부터 아동인권전문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올해 기준 799명의 전담 인력이 있다. 학대피해아동쉼터, 일시보호시설, 지역아동센터, 우리동네키움센터 등에 배치돼 조기 발견 및 신고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고 있다. 서울시에는 아동 학대로 신고돼 판단되기까지 자치구 전담 공무원, 경찰, 전문기관 간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아동 학대를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반기지 않는 손님’인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 결과 미약하나마 피해 아동 수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큰 사고가 나면 국회에서는 학대 아동의 이름을 딴 법이 만들어지고 여론이 요란해진다. 하지만 기억이 희미해지면 관련 예산은 더 급한 곳으로 떠나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찾아가는 아동 인권 전문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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