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8일 10:5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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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의 꿈이라면 한국에 세계 최고층 건물인 제2롯데월드를 완성하는 겁니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2005년 일본 주간지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1988년 1월에 잠실 롯데호텔 맞은편 부지를 서울시로부터 819억원에 사들여 이 같은 계획을 일찌감치 구상했다. 2017년 롯데월드타워는 우여곡절을 거쳐 개장했다. 신격호 창업주는 그해 5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 등과 롯데월드타워를 돌아보면서 감격에 젖었다.
하지만 그 시점 전후로 롯데그룹은 '형제의 난'과 '유동성 위기 풍문'에 시달렸다. 유동성 위기 풍문은 확산했고 롯데그룹은 13조원의 단기차입금에 압박에 시달렸다. 급기야 신격호 창업주의 숙원사업인 롯데월드타워까지 은행권 담보로 내놓는 상황에 몰린다.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롯데지주(4조4700억원), 호텔롯데(3조6613억원), 롯데케미칼(5조3083억원) 등 롯데그룹 간판 계열사 3곳의 연결기준 단기차입금(리스부채 포함)은 13조4397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보다 8365억원(6.6%) 늘었다. 2021년 말(7조3100억원)보다는 2배가량 증가했다. 단기차입금은 만기가 1년 미만으로 차입금을 뜻한다.
이들 세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6조8460억원이다. 보유 현금만 보면 단기차입금을 상환하기에는 팍팍한 살림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 상당수 단기차입금을 차환(재조달)하는 만큼 빠듯한 살림살이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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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롯데그룹의 자금조달 여건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채 금리가 치솟고, 기관투자가가 롯데그룹 회사채 인수를 꺼리는 조짐이 일부 포착됐다. 이 같은 분위기가 더 나빠지면 13조원 규모의 단기차입금 차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
유동성 위기를 부추길 '뇌관'은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기한이익상실(조기상환) 여부다. 롯데케미칼은 다음 달 19일에 14개 채권 2조450억원어치의 사채권자 집회를 연다. 이들 회사채의 사채관리계약 조항에 담긴 재무특약조건을 위반하면서 채권자들의 조기상환 사유가 발생했다. 롯데케미칼이 위반한 조항은 '최근 3년 평균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이자비용보다 5배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롯데케미칼 실적이 나빠지면서 이 같은 조항을 위반했고, 2조450억원어치의 채권이 상환 위기에 직면했다.
롯데케미칼은 다음 달 19일 회사채 채권자들을 모아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채권자를 설득해 해당 조항을 삭제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채 조기상환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이 조항을 삭제하려면 14개 회사채마다 3분의 2 채권자 의결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14개 채권자를 한꺼번에 설득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을 위해 롯데그룹은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은 채권자 설득을 위해 회사채에 은행권 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은행에는 보증 제공의 대가로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한다. 롯데월드타워는 공사비만 4조2000억원이 넘고, 현재 가치는 6조원을 웃돈다.
롯데월드타워는 그동안 어떤 금융회사에도 담보로 제공하지 않았다. 그룹의 상징이자, 신격호 창업주의 마지막 유산으로 간주돼서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롯데그룹이 이번 사태를 심상찮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신격호 창업주는 2005년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결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금을 차입한다"는 경영원칙을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경영원칙이 바뀌면서 롯데가 상당한 고초를 겪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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