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뒷마당에는 큰 ‘가마’가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 도자기를 구워내는 데 쓰였다. ‘성북동 가마’로도 불렸는데, 국립박물관 부설 연구소로 문을 연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세운 것이다. 1962년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성북동 가마에서는 수많은 조선백자가 탄생했다. 흰 백자 위에 푸른 글씨로 ‘북단산장(北壇山莊)’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작품도 남았다.
흔히 백자, 청자 혹은 작은 집기류로만 여겨지던 도자기는 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국 도자 공예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1950년대부터 전후 복구시대, 현대까지 ‘한국 도자’를 아우르는 전시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이다.
한국 도자공예가 본격적으로 현대성을 갖추게 된 1960~1970년대 시기 작품들이 전시장을 메운다. 이 시기엔 도자와 회화가 결합된 ‘도화’가 유행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작품 12점이 선보였다. 모두 이건희컬렉션 작품으로, 그가 소장한 20점의 도화 작품 중 12점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모두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들. 12점의 도화 작품은 모두 도예가 안동오의 작업이다.
이건희컬렉션 중 하나인 지순탁의 검은 다완도 공개됐다. 이 작업은 지순탁이 다도 문화가 활발했던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도자기다. 말차를 마신 뒤 가루가 까만 도자에 붙게 되는데, 녹색과 검은 색감의 조화를 고려해 제작한 작품이다. 호남지역에서 계승돼 온 옹기 제작 기법과 도예를 결합한 도예가 오향종의 작품 전시장은 황토 빛깔로 가득하다.
2부 ‘예술로서의 도자’는 1980년대 이후 ‘88서울올림픽’을 통해 들어온 국제 예술 양식을 수용한 도자공예를 소개한다. 도자 조형이 오브제와 설치작업처럼 변한 시기이기도 하다. 해학적 그림을 다완 안에 그린 이세용의 시리즈가 재치 있다.
21세기 이후 현대 도자들도 조명한다. 도자를 공간 설치작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업이 주로 나왔다. 하이라이트는 김진명의 작품 ‘가로로 쓰여진 역사’다. 왕실용으로만 쓰인 고귀한 백자대호를 가로로 붙여 놓은 작업이다. 연결된 듯 붙어 있는 백자들엔 모두 이음새가 보인다. 일부러 이 이음새를 보여주며 전통 도자에 현대적 유머를 더했다. 가마에서 나오며 터지거나 금이 간 부분은 질소 과자봉지를 구겨서 집어넣으며 메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모처럼 도자 소장품을 모두 꺼내온 전시다. 한국 도자의 진면모를 보려면 이번 전시를 놓치지 마시길. 전시는 내년 5월 6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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