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항목은 대통령실·검찰·경찰·감사원 특수활동비와 첨단 원자력 기술·신재생에너지·지역화폐·고교무상교육 국비 지원 연장·서울-양평 고속도로 예산 등이다.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의 정략이 깔린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성 지적을 받는 특활비 삭감과 ‘이재명표 예산’ 증액 수용이 안 되면 정부 동의가 필요 없는 감액만 반영한 예산안을 일방 처리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정부 주요 국정과제를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안 상정을 막기 위해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만들어진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附議) 제도도 없애려고 한다. 예산 심사권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렇게 마구 휘둘러도 되나.
이참에 예산안 처리 지연의 더 근본적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 본회의 부의 제도가 생긴 이후에도 법정 기한을 지킨 것은 두 번밖에 없다. 심사 기간의 촉박성 때문이다. 정부 예산안은 9월 정기국회 실시 전 국회로 넘어온다. 여야는 국정감사 등에 힘을 쏟느라 두 달가량 예산안을 미뤄뒀다가 11월 들어서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나마 예결위 종합정책 질의 등을 거치다 보면 증·감액을 최종 결정하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심사 기간은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쟁점 하나를 두고 며칠 옥신각신하는 게 보통인 상황에서 수백조원 예산 심사를 마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시한에 쫓기지 않으려면 정부 예산안 제출 직후부터 심사에 들어가는 등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 심사 관행을 고수한다면 정부 예산안의 국회 제출 시점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에서 10월 말쯤으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길 바란다. 그렇게 하면 매년 수십조원 발생하는 세수 오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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