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어른들도 열광…'K 그림책'은 에너지가 넘쳐

입력 2024-11-29 18:19   수정 2024-11-30 00:48


지난 28일 부산 벡스코. 제1회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리는 이곳에 수십여 명의 어른이 장사진을 쳤다. 어린이 책 잔치에 성인 독자가 몰려든 이유는 그림책 작가 이수지와 차호윤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다양한 성인 팬이 아이들과 같은 줄에서 설레는 표정으로 그림책을 들고 사인을 기다렸다.

사인회의 주인공은 그림책 분야의 ‘월드 스타’ 작가 두 명이다. 이수지 작가(왼쪽)는 2022년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과 볼로냐 라가치상, 뉴욕타임스 그림책상 등을 받았다. 차호윤 작가(오른쪽)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칼데콧 명예상을 지난 1월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신선하고 매력적인 주제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렬한 그림을 앞세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어른들까지 그림책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이 작가는 그림책이 세대를 뛰어넘어 인기를 끄는 이유를 상상력에서 찾았다. 그가 만드는 그림책엔 글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가는 “그림책은 저마다 자기만의 세계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해준다”며 “독자가 직접 글이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면서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 그림책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독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선 오로지 검은색만 사용해 책을 완성했고, <이 작은 책을 펼쳐봐>에선 책장을 펼칠 때마다 마치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점점 더 작은 책이 나온다.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에서 영감을 받은 <춤을 추었어>는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발행했다. 이 작가는 “다른 나라 도서전이나 강연을 다니다 보면 한국 그림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진다”며 “편견과 선입견 없이 창의적인 실험을 하는 국내 작가가 많아 에너지가 넘치고 역동적이란 평가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용을 찾아서>로 칼데콧상을 거머쥔 차 작가는 책에 이민자 가정 어린이의 정체성 고민을 담았다. 미국 이민 2세대인 차 작가는 “이중국적자로서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란 생각에 갈등이 많았다”며 “두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거나 한 가지만 선택할 필요 없이 양쪽 문화권을 모두 품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차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침대맡에서 읽어준 동화책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부모님은 잠들기 전 반드시 한국에서 가져온 그림책을 한 권씩 읽어줬다고. 차 작가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자라 갯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내게 부모님이 <갯벌이 좋아요>란 그림책을 읽어줬을 때 마치 마법의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며 “내 작품도 ‘베드타임 스토리’(어린이에게 잠자기 전에 들려주는 동화)가 된다면 칼데콧상 못지않은 큰 상을 받는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1일까지 국내 최초로 열리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엔 118명의 아동문학 작가가 찾는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받은 백희나 작가는 30일 ‘어린이와 판타지’를 강연한다. 안데르센상 글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이금이 작가도 같은 날 독자를 만난다. 2022년 볼로냐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된 이탈리아의 줄리아 파스토리노 등 해외 작가도 도서전에 참여한다.

부산=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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