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경제계가 병풍인가…민주당의 명분 쌓기용 상법 토론회

입력 2024-11-29 17:55   수정 2024-11-30 00:26

더불어민주당은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놓고 재계와 간담회를 했다. 참석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민주당에선 진성준 정책위원회 의장과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단장 오기형) 소속 의원들이 참석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 등이 재계를 대표해 자리했다. 주요 기업 인사들도 불려 나갔다.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하범종 LG 사장 등이다.

이번 간담회는 민주당 주도로 마련됐다.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정한 뒤 재계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 대해 재계의 한 참석자는 “분위기가 험악하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계속 겉돌았다”고 전했다. 명분을 쌓기 위한 요식 행위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진 의장의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경제단체의 입장을 ‘기업의 일방적 의견’이라고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기업의 어려움을 우회·보완할 수 있을지 열어놓고 이야기하자는 게 당의 입장”이라면서도 상법 개정 자체는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박 부회장은 “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는 2020년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계기로 어느 정도 도입됐다”며 “그런데 4년 만에 상법 개정이 다시 논의되는 것을 두고 경제계에서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을 거론하며 “국익 관점에서 규제보다는 적극적인 산업 진흥 정책이 필요하고 우리 경제의 본원적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많다”고 우려를 밝혔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간담회는 결국 평행선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또 다른 재계 참석자는 “민주당이 최근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지금 글로벌 경제의 격변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날 진 의장은 상법 개정을 강행하는 근거로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급선무라는 게 전문가와 투자자의 한결같은 요구”라고 강조했다.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도 주주가치를 충분히 제고할 수 있다는 금융당국의 제안도 무시하고,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기업가정신까지 침해하면서 강행해야 할 만큼 상법 개정이 제1 야당의 당론이 돼야 하는지 궁금증만 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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