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를 보려고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울산에서 올라왔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너무 만족스러워서 한 번 더 오려고 합니다.”
1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을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관람한 중년 남성 관람객에게 소감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날 기획전시실 매표소 앞에는 박물관 개장 시간인 10시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인터넷 예매 가능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되자 현장 판매 표를 구입하려는 이들이었다.
개막일인 전날 관람객은 3000명을 넘어섰다. 아침부터 야간 개장 시간인 9시까지 시간별로 수용 가능한 최대 인원을 한도까지 꽉 채운 것이다. 이틀간 관람객은 이미 5000명을 돌파했다. 관람객들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작품 해설을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모바일 전시 안내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자수 과다로 마비 사태까지 겪었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박물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는데, 즉시 서버 용량을 늘려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비엔나전이 어떤 매력을 가졌길래 이렇게 열기가 뜨거울까. 미술 전문가들이 분석한 흥행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최고 수준의 전시를 직접 만들어온 미술계 관계자들도 전시장을 둘러본 뒤 “어떻게 한 거냐”고 감탄을 연발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오스트리아 빈 레오폴트미술관을 최근 다녀왔는데, 거기서 봤던 좋은 작품이 다 와 있다”며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모두 한국으로 가져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에곤 실레의 작품 몇 점만 가져오는 전시일 줄 알았는데, 잘 몰랐던 초창기 작품부터 대표작까지 아우르는 구성에 놀랐다”고 찬사를 보냈다.
가볍게 훑어보고 건너뛸 만한 습작 수준의 소품은 이번 전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다른 전시에 비해 훨씬 긴 이유다. “3시간 넘게 관람했다”는 관람평도 있었다. 이날 전시장에서는 아기를 안은 아버지,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 젊은 연인 등 다양한 관람객들이 작품과 설명은 물론 관련 정보를 담은 동영상과 기획 의도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전시 초입에 있는 첫 번째 작품인 빈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와 마지막 영상을 통해, 빈 분리파의 두 거장 클림트와 실레의 아름다운 우정을 조명한 ‘수미쌍관식 구성’도 감동적이라는 평가다. 전시장에서 만난 베아트리체 갈릴리 전 메트로폴리탄미술관박물관 큐레이터는 “단순한 명화전을 넘은,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큐레이션”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최고 수준인 국립중앙박물관의 큐레이션과 전시 디자인 능력은 이번 전시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작품을 제공한 레오폴트미술관의 한스 페터 비플링어 관장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전시를 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가 단연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털어놨다. 건너편 상설전시관에서 열리는 고미술 전시인 ‘고려 상형청자전’과도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청자전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은 “비엔나전을 관람한 뒤 청자전을 봤는데, 국내외 미술의 정수를 한 곳에서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역대 최고 수준의 관람객을 예상한 국립중앙박물관이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한 덕분이다. 먼저 티켓을 예매할 때부터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제한했다. 국가유공자 등 반드시 증빙이 필요한 할인·무료 입장권이 아닌 일반 티켓을 예매한 사람은 매표소 줄을 서지 않고 즉시 전시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입장 절차도 개선했다. 현장 발권 티켓은 관객들이 헛걸음하는 일을 막기 위해 잔여 수량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인이 가능토록 했다.
인파에 가려 설명을 못 보고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모바일 전시 안내 홈페이지를 마련한 것도 주목받았다. 전시장에 있는 모든 설명과 글귀를 볼 수 있고, 글자 크기를 관람객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노년 관람객들에게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QR코드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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