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커다란 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순수예술부터 대중문화 콘텐츠까지 ‘K웨이브’가 이제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겁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은 한류가 전 세계 2억 명의 잠재 소비자를 보유한 유망 시장으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유 장관은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는 이제 핵심 수출 상품”이라며 “내년 여름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K컬처를 총망라한 메가 이벤트가 그 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은 이어 순수예술 시장의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제2의 조성진 피아니스트, 차세대 한강 작가를 꿈꾸는 예술가들의 해외 진출의 장(場)을 넓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 문화 정책이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침체한 문화예술을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렸습니다. 예술인 창작 공간도 확대했습니다. 더 자유로운 도전이 가능해졌습니다. 효율적인 문화예술 지원 체계도 갖췄습니다.”
▷‘한류산업진흥기본법’이 내년부터 시행됩니다.
“한류와 한류산업의 법적 정의를 처음 명시한 법입니다. 지난 10월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그 일환으로 내년 6월 서울에서 한류 연관 산업을 한데 모은 ‘비욘드 케이 페스타(Beyond K Festa)’(가칭)를 열 겁니다.”
▷어떤 취지의 행사인가요.
“전 세계 한류팬이 2억2500만 명에 달합니다. 이들이 소비하는 음악, 영화, 게임 등 콘텐츠산업의 수출 규모는 이미 2차전지와 가전을 뛰어넘었죠. K뷰티, K푸드, K패션 같은 연관 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겁니다.”
▷평소 ‘예술한류’도 강조했습니다.
“순수예술이 한류의 바탕입니다. 글 잘 쓰는 시인, 감동을 주는 무용수가 나와야 합니다. 좋은 영화와 드라마, K팝의 파급 효과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예술한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예술가들의 성과가 개인의 성취에 그치지 않고 산업 활성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작품이 전 세계에 활발히 유통돼야 하죠.”
▷한국 예술인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15년 만에 장관으로 돌아와 보니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K팝 가수 로제의 노래 ‘아파트’가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조성진·임윤찬 피아니스트나 김기민·전민철 발레리노 등 예술가들이 장르별로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최근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세계적으로 문화의 흐름이 바뀌는 시간을 보통 50년으로 잡습니다. 한류가 세계인의 삶을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은 10여 년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인의 문화적 저력이 대단합니다.”
▷반면 예술시장 생태계는 허약합니다.
“예술시장이 가장 활성화되는 곳이 축제입니다. 창작자, 관람객, 소비자, 국내외 바이어가 모두 모이는 장을 만들 겁니다. 지난달 서울아트마켓,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을 연계한 ‘대한민국은 공연중’을 열었습니다. 우수 작품이 소개됐고 해외 진출에도 시너지가 났습니다. 내년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마켓형 공연예술축제로 자리 잡을 겁니다.”
▷문화예산 비중이 1%대에 불과합니다.
“문화의 경제·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재정 투입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한정된 여건 속에선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합니다.”
▷지원을 확대한 분야도 있나요.
“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예술 창작 지원, 출판 예산을 확대했습니다. 투자가 크게 위축된 영화산업에도 100억원 규모의 ‘중예산영화 지원사업’을 새롭게 편성했습니다.”
▷지원 체계도 손질한다고요.
“그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일회성 나눠주기식 지원에 집중했습니다. 문화예술 생태계가 수월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으로 장르별 핵심 플레이어를 육성해야 할 때입니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요.
“공모사업 심사에 경력 10년 이상의 내부 직원이 참여하는 ‘책임(전담)심의관’ 제도를 도입하는 겁니다. 해외 선진국 문화예술기관에선 오래전부터 운영 중입니다.”
▷현행 방식과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까지 우리는 외부위원만 내세웠습니다. 일회성으로 심사하고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심의 일관성, 선정 작품 후속 관리에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었지요. 심사가 끝나면 늘 뒷말이 나왔습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가 불문율 아닌가요.
“국민 세금으로 지원한다면 결과만큼은 책임져야 합니다. 지원 시작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두 챙겨달라는 겁니다. 외부에 의존할 게 아니라 지원 기관이 심사 전문가가 되면 가능합니다. ‘블랙리스트’ 등 현장의 우려도 잘 압니다. 올해 제도를 시범 운영 중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심사위원 명단을 사전에 공개했습니다.”
▷젊은 예술인의 활동 폭만 줄어들지 않을까요.
“청년들이 전업 예술인이 될 수 있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겁니다. 올해 처음 시도한 국립예술단체 청년교육단원 규모를 350명에서 내년엔 600명으로 대폭 늘릴 계획입니다. 발레, 합창, 오케스트라, 전통국악 등 장르별로 30~40명씩 뽑을 겁니다. 서울 마포와 홍대 일대에 창작과 공연 거점이 될 마포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는 2026년 개관하면 청년예술인 중심의 공간으로 거듭날 겁니다.”
▷문화 불균형 해소도 주요 과제입니다.
“문화는 삶의 방식을 바꿉니다. 지역과 세대 갈등, 저출생·양극화 같은 현실과 맞닿은 문화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선은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지역균형에 방점을 둘 겁니다. 지역도 경제적·사회적 인프라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정신적 만족감을 키울 문화적 역할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문화도시’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연말에 13개 문화도시를 지정합니다. 특색 있는 문화 자원을 인정받은 도시입니다. 내년부터 3년간 도시마다 2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지역 특화콘텐츠와 예술단체를 키울 겁니다. 인근 권역까지 문화 여건을 개선하는 선도도시가 되는 거죠.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과 서울의 문화 격차 해소입니다. 서울이 기반인 예술단체가 지역으로 내려갈 경우 확실하게 지원 사격할 겁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후반기 주요 추진 과제로 투명한 스포츠 행정 체계 확립을 거론하며 이렇게 밝혔다. 유 장관은 이를 위해 내년 문체부에 ‘스포츠혁신지원과’(가칭)를 신설하고 체육계 불공정 관행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예고했다. 최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공직복무점검단이 대한체육회를 대상으로 한 점검에서 업무방해, 부정채용, 금품수수 등 비위 혐의가 드러난 데 따른 조치란 설명이다. 유 장관은 특히 국가대표선수촌이 올림픽을 앞두고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선수에게 식용이 금지된 뱀탕 등을 제공하고, 이 비용을 대납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지인이 파리올림픽 선수단에서 주요 직위를 맡았다는 조사 결과를 두고 “보양식으로 매관매직까지 하는 믿기 어려운 일이 체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체부는 체육단체 임원의 연임 심의를 별도 기구에 맡기고, 임원 징계관할권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조사에서 비위 혐의가 드러난 이 회장이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한 ‘셀프 연임 심사’로 체육회장 3연임 도전을 승인받으면서 사실상 체육계가 자정 능력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11일 이 회장의 직무를 정지하고 차기 선거에 출마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유 장관은 “체육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누구보다 규칙을 준수해야 할 체육회 행태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며 “낡은 관행을 혁신하기 위해 체육계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체육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권고한 스포츠 독립성을 훼손하는 과도한 정부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유 장관은 “IOC 위원이라도 국내법을 위반하면 절차대로 조치를 받아야 한다”며 “선수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체육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행정·재정적 조치를 계속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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