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러시아·중국 주도의 신흥경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를 향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30일(현지시간) SNS를 통해 “브릭스 국가들이 달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우리가 방관하며 지켜보는 시대는 끝났다”며 “이들 국가는 새로운 브릭스 통화를 만들지도, 강력한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원하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100% 관세를 부과받을 것이며, 미국이라는 훌륭한 경제 시장에서 판매할 기회를 영영 잃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브릭스 소속 국가들은 탈(脫)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역내 통화 활용을 늘리고 회원국 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달러 무기화’를 언급하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 안쓰면 100% 관세"…脫달러 움직임 경고
금융제재 대비 나선 브릭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달러 대안을 찾는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CIS)를 향해 경고를 보낸 것은 기축통화 패권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세계 외환 거래에서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가까워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브릭스를 중심으로 탈(脫)달러 논의가 거세지고 있다.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
1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세계 외환거래에서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88%다. 각국의 경제 활동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움직임이 보인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70%를 넘긴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의 달러 비중은 지난해 58%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각국이 달러에만 의존했을 경우 환율 변동이나 미국 경제 상황, 미국 정부의 통제 등에 휘둘릴 수 있다고 우려한 결과다. 실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을 차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0월 러시아 연방인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달러가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페트로위안’ 시동
미국과 긴장 관계에 있는 중국도 러시아와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2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중국·걸프 아랍국가협력위원회 정상회의’에서 “(장기적으로) 원유 및 천연가스 무역에서 위안화를 쓰자”고 제안했다. 반다르 알 코라예프 사우디 산업광물자원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원유 대금 결제에서 위안화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브릭스에 속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과의 긴장 관계가 이어지자 금융 제재를 이유로 달러 외 안전 자산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브릭스 국가들의 금 보유량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IMF는 “금융 제재가 과거에 도입됐을 때 중앙은행들이 금과 같이 제재 위험이 없는 자산으로 이동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브릭스는 회원국 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결제 시스템 구축안도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 “미 달러가 큰 포위에 직면”
브릭스의 이 같은 움직임만으로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가 쉽사리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10~20% 세율의 보편관세 등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펼치면 달러의 위상이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투자 전문 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스티븐 블리츠 TS롬바르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무역 적자를 줄이려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달러의 국제적 사용을 감소시키며 힘을 약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기축통화를 발행한 국가는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감수하며 통화를 공급해야 한다는 ‘트리핀 딜레마’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 측이 이 같은 위기감에 따라 선제적으로 달러 위상 약화에 대한 방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미국 달러가 큰 포위에 직면했다”고 언급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과 그의 경제 자문들은 달러 이외의 통화를 사용해 양자 무역을 하려는 동맹국 및 적대국 모두를 처벌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