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상 받은 OLED 연구원, 중국에 핵심기술 빼돌려

입력 2024-12-01 17:58   수정 2024-12-01 18:13


‘디스플레이산업 유공자’로 장관상을 받은 국내 대표 기업의 수석연구원이 중국 경쟁사에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13년간 쌓은 기술력이 통째로 중국으로 넘어가 국내 기업이 수천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검찰청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경택)는 최근 전 삼성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부문 수석연구원 A씨를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 국외 누설 등)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A씨는 10년 전 디스플레이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은 인물이다. 2006년 8월부터 2019년 3월까지 13년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하며 차세대 OLED 패널의 핵심인 ‘백플레인’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이 기술은 산업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이다.

A씨는 퇴사 두 달 뒤인 2019년 5월 중국 우한의 디스플레이 업체 티엔마로 이직하며 관련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그의 이직을 전후해 티엔마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17년 매출이 4300만달러에서 2023년 13억4600만달러로 31배 이상 급증했다. 전무하던 OLED 시장 점유율도 1.7%를 기록하며 시장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씨의 기술 유출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입은 피해액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첨단산업 보호 중점 검찰청인 수원지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기술유출이 가장 심각한 분야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OLED 등이다.

박경택 부장검사는 “혁신 기술 탈취는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라며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로 추가 피해를 막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놓친 기술유출, 檢수사로 드러나…기소율 2배로
매년 60조 손실에 검찰 수사 강화…실형선고율 3배
기술 개발 공로로 장관상까지 받은 수석연구원의 핵심 기술 유출은 산업기술 유출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삼성디스플레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유출 사건은 경찰이 애초 무혐의 의견을 냈지만 검찰의 1년에 이르는 보강수사 끝에 실체가 드러났다. 산업보안 전문가들은 “기술유출 범죄는 초기 대응이 핵심”이라며 “초반에 정밀하고 신속한 수사에 실패하면 기업과 국가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찰 ‘무혐의’→검찰 ‘구속기소’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구속기소된 삼성디스플레이 전 수석연구원 A씨 사건을 맡은 경찰은 애초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일부 혐의에 대해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1년여간 보강수사를 해 OLED 백플레인 공정 기술유출 혐의를 입증했다.

당시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 OLED 시장 점유율 1위(82%)를 차지하고 있었다. 회사는 퇴직자에게 2년간 동종 업체 전직을 금지하는 약정을 맺고 주기적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A씨가 중국 티엔마로 이직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피의자의 해외 체류를 이유로 2021년 8월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가 2022년 1월 그의 입국과 동시에 수사를 재개했으나 혐의없음 의견으로 수원지방검찰청에 사건을 송치했다.

혐의사실은 검찰 수사에서 뒤바뀌었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경택)는 1년여간의 정밀 수사와 특허청 산업기술 수사자문관의 자문을 통해 OLED 백플레인 공정기술 유출 혐의를 입증했다. 이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국가 핵심기술이자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한다. 기술 유출로 삼성디스플레이는 수천억원대 피해를 본 반면, 티엔마의 실적은 급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60조 손실…기소·실형 비중 껑충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기술유출 범죄로 매년 약 6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피해 규모와 유출에 따른 피해 정도는 국가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차원으로 커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은 2022년 9월부터 기술유출범죄 수사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지휘체계를 강화하고 전국 청에 150여 명의 전담 검사와 수사관을 배치했다. 이들은 첨단 기술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들로 디스플레이,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산업 기술유출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법무부·대검찰청에 따르면 기술유출 범죄 기소율은 2022년 11.2%에서 올해(8월 기준) 21.5%로 2년 새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불기소율은 88.8%에서 78.5%로 떨어졌다. 이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된 범죄자 대비 기소된 인원을 계산한 것이다.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들이 실형을 선고받는 비율은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2020년 8.7%에 불과하던 실형 선고율은 지난해 28.2%까지 올랐다. 올해도 27.5%(8월 기준)를 기록하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국가핵심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이 최대 징역 18년형까지 상향 조정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작년 7월 국가핵심기술을 국외로 유출한 피의자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사건처리 기준을 마련했다. 이에 구속 기소율도 2022년 2.2%에서 올해(8월) 5.4%로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검찰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유출 범죄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검찰의 정밀한 법리 검토와 고도의 집약적·체계적 수사가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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