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의 비혼 출산으로 한국이 떠들썩하다. 특히 정우성이 문가비와 결혼 계획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아버지로서 책임은 다하겠다'고 약속한 이후로 비(非)전통적 가족 구조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는 모양새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비혼 가족 구성을 뒷받침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향후 '전통 대 비전통' 구도의 격론으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이미 일각에서는 "책임은 진다면서 결혼은 싫다니 무슨 소리냐"(정유라씨) 등 비판이 나온 상태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갈수록 많아질 이 땅의 문가비씨 모자를 위한 연대관계등록제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연대관계등록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는 사전에 '연대관계인'(혹은 보호인)으로 등록하면 미성년인 자녀가 있는 한부모 가정이나 1인 가구의 수술, 장례 등에 가족을 대신해 동의해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박 의원은 "이는 전통적 가족 모델이 해체되고 새로운 가족 형태들이 등장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일이기도 하다"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초저출산 시대, 인구절벽 탈출을 위해선 아이의 행복 우선과 엄마의 선택 존중이라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개인과 가족, 마을을 넘어 온 대한민국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혼 출산의 결정이 지금처럼 '특별한 개인의 용감한 결심'으로 평가되지 않도록, 시급히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함께 연대관계등록제 도입을 비롯한 국가적 제도의 정비가 이뤄져야겠다"며 "결혼하지 않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낳아 키우기로 한 모델 문가비씨의 당당한 결단을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여당에서는 나경원 의원이 전날 정우성·문가비 이슈를 언급하면서 '등록 동거혼' 도입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등록 동거혼은 남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동거 신고'만 하면 국가가 기존 혼인 가족에 준하는 세금 및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나 의원은 먼저 프랑스의 사례를 설명했다. "2016년 국회 저출산특위 위원장 시절,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프랑스 측 전문가는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의 주요 원인으로 서슴지 않고 등록동거혼을 꼽았다"며 "프랑스는 1999년 등록동거혼(PACS)을 도입했다. 이혼 절차를 부담스러워하는 젊은이들에게 혼인 barrier(장벽)를 낮춰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등록 동거혼은 계약, 법률혼은 혼인이다. 따라서 전자는 계약 해지로 종료하고, 후자는 이혼으로 종료한다. 전자는 위자료나 재산분할이 없고, 후자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이 주요 이슈"라며 "다만 등록 동거혼도 법률혼과 똑같은 가족수당, 실업수당은 물론 각종 세제 혜택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등록동거혼의 70%는 법률혼으로 이행하고, 30% 정도가 해지한다"고 했다.
나 의원은 결혼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 인식과 그에 따른 문제점도 짚었다. 그는 "우리 젊은이들의 경우 혼인은 어떨까? 일단 혼인이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사고가 상당히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혼 절차 및 이혼 후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본다"며 "이제는 저출산을 극복하는 제도로뿐만 아니라 비혼 출산 아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등록 동거혼 제도를 인정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비혼 출산아 지원 대책 검토에 들어갔다. 경북도는 이날 도청에서 열린 제25회차 저출생과 전쟁 혁신 대책 회의에서 자체 저출생 정책 지원 대상을 부모 및 법률혼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전환하고, 비혼 출산아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또 자녀를 출산한 동거인에게 부모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등 내용의 가칭 '동반 가정 등록제' 도입 추진을 정부에 건의하고 국회 입법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이제 우리나라도 비혼 등 혼인 외 출생 등에 대한 법과 제도적 지원 체계를 갖추고 공동체 회복 기반의 다양한 확장적 가족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도 '비혼 출산'을 언급하면서 정책 보완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방안에 관한 질문에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어떤 면을 지원할 수 있을지 앞으로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며 "사회적 차별이라든지, 여러 가지 제도로 담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한부모 가족이나, 어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어서 태어난 아이 한 명 한 명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겠다는 자세에는 일관된 정부 철학이 있기 때문에, 그런 철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혹시라도 빠진 부분이 있으면 보완해 나가겠다"며 "현재 아동수당, 부모 급여, 육아휴직 등 육아 지원 정책은 아이 기준으로 하고 있으므로 대부분 지원 정책은 부모의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시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책과는 거리가 있지만, 사회에서 정우성과 문가비의 아들 같은 비혼 출산아를 '혼외자'라고 부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행 민법은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태어난 아동을 '혼인외의 출생자'(혼외자)와 '혼인 중의 출생자'(혼중자)로 구분하고 있다.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전날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아이를 혼외자·혼중자로 구분해 부르는 것 자체가 정상성에 대한 지독한 강조인데다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했다.
앞서 정우성은 문가비가 최근 출산한 아들의 친부라는 사실이 공개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에도 사생활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사진 등이 유출되면서 논란은 확대를 거듭했다. 그러던 정우성은 지난달 29일 청룡영화상 시상식 무대에 올라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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