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알리바바그룹이 국내 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투자한다. 한국 전자상거래(e커머스)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알리바바그룹의 해외 직구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가 국내 이커머스 오픈마켓(종합몰)에서 시장점유율을 급속도로 높이는 가운데 국내 패션 전문업체까지 직접 투자하면 한국 유통 시장의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에이블리 "알리바바서 1000억원 투자"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중국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1000억원을 투자받으며 첫 글로벌 자본을 유치했다고 2일 밝혔다.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와 남성 패션 전문몰 4910(사구일공), 일본 패션몰 아무드(amood) 등을 운영하는 기업이다.이번 투자로 알리바바는 5% 안팎의 에이블리코퍼레이션 지분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바바가 한국 이커머스 플랫폼 지분을 확보한 첫 사례다.
에이블리는 특히 이번 투자 유치 과정에서 3조원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2022년 1월 '프리(Pre) 시리즈C' 투자 유치(약 670억원) 당시 기업가치가 9000억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약 3년 새 세 배로 불어난 셈이다.
에이블리는 2018년 동대문 의류 쇼핑몰 모음 앱으로 출발했다.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모바일 패션몰을 창업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 빠른 속도로 판매자를 끌어모았다. 올해 상반기에만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달성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연간 기준 2조원 이상 거래액이 예상되는데 이를 달성하면 국내 여성 패션 플랫폼 중에선 최초다. 현재 에이블리에 입점한 쇼핑몰 수는 5만여 개로 업계 최대다.
모바일앱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에이블리의 지난 10월 기준 월간활성이용자(MAU)는 878만 명으로 션을 포함한 모든 카테고리 전문몰 중 가장 많았다. 전체 모바일 쇼핑앱으로 넓히면 쿠팡(3203만 명), 알리익스프레스(904만 명) 등에 이어 3위다. 11번가(744만 명), G마켓(548만 명)보다 사용자 수가 많다.
알리바바는 2020년 무렵부터 국내 e커머스업계와 접촉하며 인수 또는 지분 투자를 타진해 왔다. 지난해 SK그룹 계열 오픈마켓인 11번가 인수를 추진하다가 무산됐다. 앞서 무신사에도 투자 의향을 내비쳤으나 무신사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오늘의집, 발란 등 이커머스 관련 기업을 다수 후보군으로 물색하다가 에이블리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e커머스에 눈독 들이는 中 알리바바
알리바바가 최근 국내에서 투자를 검토하는 기업은 대부분 수년간 적자를 이어왔다. 에이블리는 2021년 695억원, 2022년에는 74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계가 1129억원인 반면 부채총계는 1672억원에 달해 자본총계가 -543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다만 지난해에는 3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에이블리 측은 “이번 투자 유치를 시작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와 해외 국부펀드 등으로부터 1000억원대 추가 투자 유치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기업들이 향후 미국 진출이나 상장, 국내 정서 등을 감안해 중국계 자금을 유치를 꺼리는 분위기”라며 “알리바바 측이 당장 투자 제안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자금이 급한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 위주로 인수나 투자에 나서는 양상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커머스업계에선 알리바바가 국내 업체 인수를 통해 한국 시장 재편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성장률은 높지만 미국, 중국 등과 달리 최대 승부처로 여겨지는 ‘시장점유율 30%’ 고지를 선점한 업체가 없다. 업체 수가 많고 출혈 경쟁이 심해 경영난에 처한 곳도 다수다. 이 같은 분위기를 활용해 알리바바가 외부 자금 수혈이 시급한 국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 위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알리바바는 주로 초기에 지분 투자를 단행한 이후 신뢰가 쌓이면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그룹에서는 최근 국내외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나의 사업부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알리바바가 2023년 초에 전체 사업 체계를 6개의 별도 사업부로 분할한 이후 가장 큰 규모라는 평가다. 이 사업부에는 알리바바그룹 후계자로 꼽히는 39세 장판이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최대 경쟁업체인 테무의 한국 시장 내 점유율이 높아지는 데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테무와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으로 꼽히는 한국 등 국외 시장에서 규모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겠다는 기조로 해석된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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