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상장사에 투자한 일반주주의 이익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을 바꿔 기업 인수합병(M&A), 쪼개기 상장 등을 할 때 기업이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보다 더 고려하도록 유도하는 게 골자다.
2일 김병환 금융위원회장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발표했다. 국내 상장사들의 일반주주 이익 보호 의무를 확대함으로써 자본시장 투명성을 높여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에 기여한다는 취지다.
이 안은 이후 국회 논의를 거치게 된다. 김 위원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여당과 협의해 의원입법으로 이번 주 빠른 시일 내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는 상장사의 주요 구조 변동 사안에 대해 이사회가 반드시 검토해 자체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라는 얘기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업이 합병 등 자본거래를 할 때 일부 대주주만이 아니라 일반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앞서 비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서만 산식을 자율화해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당시 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선 이같은 개선안을 일단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엔 대등한 당사자 간 거래가 아니라 대주주 위주로 의사결정이 이뤄져 일반주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금융위는 “상장법인이 합병 등을 하는 경우 주식가격,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한 ‘공정한 가액‘으로 결정하라는 것”이라며 “일률적인 산식 대신 기업의 실질 가치를 반영한 가액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M&A에 대한 외부 평가·공시 의무도 확 늘린다. 원칙적으로 모든 합병에 대해 제삼자인 외부평가기관이 평가·공시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이다. 현재는 상장 계열사 간 합병 등에 대해선 외부평가·공시 여부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다. 이를 통하면 기업 합병 시 결정된 몸값 등에 대해 객관성과 중립성을 보다 보장할 수 있고, 일반 투자자에 대한 정보 비대칭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기존 증권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기업공개 공모주식은 우리사주 20%, 일반투자자청약 25%, 기관투자자(55%) 등으로 배정된다. 이 구조를 적용하면 모회사 일반주주는 공모주식을 우선적으로 받아갈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상장사가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등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 자회사로 상장하면 앞서 핵심 사업부를 성장동력으로 보고 투자했던 모회사의 일반주주는 해당 사업부를 간접 소유하는 식으로 바뀌어 사업부의 성장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정안은 기존 배정 규정에서 일반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비중은 줄이고, 모회사 일반주주의 비중을 새로 잡도록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를 무조건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존 주주 우선 배정 등을 의무화하는 대신 상장사가 물적분할을 해 신규상장을 시도할 때 한국거래소가 기업의 일반주주 보호 노력을 따져 상장심사하는 의무 기간을 ‘무제한‘으로 바꾸기로 했다. 기존엔 물적분할 이후 5년 이내에 자회사를 상장할 때만 거래소가 모회사 일반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을 심사한다. 거래소가 기업의 노력이 미흡하다고 본 경우엔 상장을 제한할 수 있다.
금융위는 “영업양도·현물출자 방식 등 물적분할을 우회할 수 있는 기업 분할 형태에 대해서도 동일한 수준으로 질적 심사를 실시하도록 거래소 세칙을 바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정치권과 재계 안팎에선 정부가 상법 개정을 통해 일반주주에 대한 상장사의 의무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일었다. 기업 이사의 의무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라고 규정한 현행 상법 제382조의 3 조항 내용을 ‘회사와 주주의 비례적 이익 혹은 회사와 총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로 바꾸는 식이 거론됐다.
지난 5월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법상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 수렴을 할 계획”이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상법 대신 보다 좁은 범위인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재계 안팎 등에서 상법을 개정할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을 저해해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빗발친 영향 등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상법 개정보다는 ‘맞춤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간 기업의 주주 보호 의무 강화를 역설해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말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주주의무원칙을 만드는 게 상법개정보다 더 합리적”이라며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 2400여개에 적용되는 규율체계인 반면 상법은 103만개 넘는 비상장법인도 적용받는 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을 바꿀 경우 이사회가 법상 절차만 준수하면 면책을 보장받을 수 있어 기업의 경영활동에도 제약이 덜 할 것이란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적용 대상 법인을 상장법인으로 한정하고자 했다"며 "상법 개정은 비상장기업과 중소·중견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적용 대상 행위를 자본시장법 제165조의 4에서 규정하는 네 가지 행위로 한정하면 기존 논의시 제기됐던 상법 개정에 따른 일상적 경영활동의 불확실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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