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못한 일 우리는 해낸다"…큰소리치더니 결국 대참사

입력 2024-12-03 17:39   수정 2024-12-0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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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사임했다. 2021년 경영난 속에 취임한 지 3년9개월 만이다.

인텔은 2일(현지시간) 겔싱어 CEO가 전날부로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임시 CEO로는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클라이언트컴퓨팅그룹(CCG) 사장을 임명했다. 겔싱어 CEO는 이날 낸 성명에서 “힘들지만 필요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반도체업계에서는 겔싱어가 사실상 해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주 겔싱어와 이사회가 시장 점유율 회복, 엔비디아와의 격차 해소 방안 등을 논의하면서 의견 충돌이 극에 달했다”고 전했다.

파운드리·AI 칩 승부수 실패
겔싱어의 씁쓸한 퇴장은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재무제표상 숫자만 중시하는 경영자) 함정에 빠진 인텔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CNBC는 “겔싱어가 CEO로 취임해 떠안은 문제 대부분이 (빈 카운터스인) 전임 CEO들이 내린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고 진단했다.

2021년 사상 최악의 경영난 속에서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겔싱어는 CEO 취임 직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대표적인 게 2018년 전격 철수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 재진출이다. 겔싱어는 2021년 취임 직후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약 28조원)를 쏟아부어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에는 2030년까지 글로벌 파운드리업계 2위가 되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현재 글로벌 시장 1·2위인 TSMC와 삼성전자도 확정하지 않은 1나노대 반도체를 2027년부터 양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텔이 자랑하던 최첨단 공정의 수율이 10% 미만이라는 보도가 잇달아 나왔고, 연이은 생산 결함에 고객사들이 이탈했다. 인텔은 결국 9월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하고 일부 공장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야심 차게 출시한 인공지능(AI) 가속기 ‘가우디’도 마찬가지였다. 인텔은 가우디를 통해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4월엔 가우디3를 공개하며 엔비디아 ‘H100’보다 전력 효율이 두 배 이상 높고 AI 모델을 1.5배 더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우디3는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겔싱어 CEO는 10월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가우디의 활용이 예상보다 더디다”며 올해 목표로 삼은 5억달러 매출은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인텔은 올해 직원 1만5000명을 해고하고 내년에 100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자구책을 내놨다.
보잉·스텔란티스도 빈 카운터스 함정
인텔의 몰락은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시장의 흐름을 놓치며 시작됐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50여 년간 업계 최강자로 군림해 온 인텔은 ‘1위 기업’이라는 현실에 안주해 혁신을 소홀히 했다. 적당한 현상 유지가 목표이던 마케팅·재무 출신 CEO들은 차례로 2006년 애플의 아이폰용 칩 개발 요청과 2019년 오픈AI의 생성형 AI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한때 ‘반도체 제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인텔은 지난달 반도체산업 대표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다우지수에서 퇴출당하고, 그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빈 카운터스 함정에 빠진 인텔의 모습은 한때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던 보잉과 스텔란티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랜 시간 민간 항공기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던 보잉은 737맥스 기종을 개발하던 당시 기존 737 기종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럼에도 단기적인 비용 절감에 집착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엔진 교체로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 결국 보잉은 737맥스 기종의 사고를 잇달아 겪고, 데이비드 칼훈 보잉 CEO는 8월 사퇴했다.

지프, 크라이슬러, 푸조 등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4위 완성차 그룹인 스텔란티스의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도 비용 절감 전문가였다. 스텔란티스는 전기차 전환에서 뒤처졌고, 결국 타바레스 CEO는 지난 1일 당초 2026년까지이던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경영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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