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1월 신세계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돼 창업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면세점 사업에 진출했다. 그때 사업권을 따낸 기업에는 원자력발전·중장비 등 중후장대 업종이 주력인 두산그룹도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의 쇼핑 성지였던 동대문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함께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던 박용만 회장의 네트워킹이 큰 역할을 했다. 박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경제사절단의 리더로 매번 동행하던 때다. 면세점 선정을 앞두고 정부가 주도한 청년희망펀드에 30억원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다.
면세점 전성기에 꼭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황금알의 원천이 바로 깃발 든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커(遊客)’였다. ‘1000만 유커’는 유통가의 슬로건이었고, 유커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력을 분석하는 보고서와 책도 쏟아졌다. 그러나 유커의 꿈은 딱 두 사건으로 허망하게 날아갔다.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限韓令)’과 3년 뒤 코로나19 사태다.
기업 총수의 역량을 가름하던 면세점 사업은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대기업 면세점 신규 주자인 두산과 한화가 2019~2020년 다 손을 들었다. 남아 있는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등도 모두 지난 3분기에 적자를 냈다. 면세점 사업자 입찰을 할 때면 국내 관광 인프라 개선을 위해 뭐든 할 것 같은 태세였던 이들 기업은 이제 면세점 사업권 비용인 특허수수료를 깎아달라고 요청하는 신세가 됐다. 국내 방문 해외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그런데도 면세점이 과거와 같은 영화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신 올리브영 같은 K뷰티 매장이 새 명소로 뜨고 있다. 면세점의 부침을 봐도 비즈니스 세계는 정말이지 ‘생물’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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