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심야 긴급 담화로 시작된 계엄령 선포는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여야 의원 190명이 해제 요청을 한 데 따른 것이다.
3일 계엄 선포는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인 감액 예산안 처리,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 처리 예고 등에 따른 윤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계엄령 선포는 지나치다”는 비판이 여당에서도 터져 나오며 계엄령은 신속히 해제됐다.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온전히 윤 대통령과 정부가 지게 될 전망이다.
계엄 선포 직후 의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재적의원 과반이 넘으면 계엄을 철회할 수 있는 법 규정에 따라 150명 이상을 넘기는 것이 관건이 됐다. 여야 의원이 속속 집결하며 밤 12시 전에 이미 “본회의장 안에 있는 의원이 150명을 넘겼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증원된 경찰과 긴급 투입된 계엄군이 뒤늦게 국회 진출입을 차단했지만 이미 본회의장에는 계엄을 취소시킬 수 있는 숫자의 의원들이 모여들었다. 의원 수를 확인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밤 12시40분께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다.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 의안과에서 만들어질 때까지 10여 분간 기다린 우 의장은 4일 오전 1시께 해당 의안을 올려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계엄령 해제안이 처리되면서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던 계엄군도 철수했다.
윤 대통령은 3일까지 야당의 ‘입법 독주’ 등과 관련한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 당장 11월 30일인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난 직후 정부안이 아니라 야당 예산안이 본회의로 제출됐다. 이전에는 국회법에 따라 여야가 기한 안에 예산안 심의를 마무리 짓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그대로 본회의로 올라왔다. 이후 양당 원내대표는 기존 논의의 연장선에서 정부안을 증액·감액한 뒤 통상 12월 하순에 합의안을 처리해왔다. 연말까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정부안이 본회의에 올라 표결에 부쳐진다. 야당은 이를 부결시킬 수 있지만 ‘나라 살림살이를 발목 잡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12월 이후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민주당이 감액 예산안을 상정하며 전제 자체가 달라졌다. 양당 원내대표 협상의 기준점이 정부안에서 4조1000억원을 덜어낸 민주당안이 된 것이다. 여야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면 민주당은 언제든 감액안 처리를 요구할 수 있다. 합의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상정한 안이 최종 처리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여당의 마음이 더 급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쫓기는 상황에서 예산과 관련된 민주당의 입장을 수용해야 할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의 검사 탄핵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검사들에 대한 감사요구안을 강행 처리했다. 감사요구안에서 검사 탄핵에 반대한 검사들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 및 정치운동 금지 등 관련 법령 위반 의혹’이 있다고 한 것이다. ‘(검사들의) 검사 법령 위반 행위에 대한 방조, 조장 의혹’을 이유로 법무부와 검찰도 감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들은 2일 이 지검장 등 검사 세 명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자 비판 성명을 냈다.
최 원장은 이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은석 감사위원의 후임으로 백재명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를 임명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최 원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과 감사원이라는 사정기관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계엄령은 사실상 해제됐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은 여야를 막론하고 강하게 제기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당장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며 가능한 빨리 탄핵안을 국회에 부의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여당 의석이 108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현재 분위기에서는 탄핵안 처리 가능성이 작다고 보기 힘들다.
이에 따라 자칫하면 2017년과 같은 대통령 탄핵 사태가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국회의 계엄 해제안 처리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노경목/설지연/배성수 기자 autonom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