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①
메종 마르지엘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타비(TABI) 슈즈(사진①)와 숫자로 쓰여진 라벨이다. 타비 슈즈는 일본의 나막신 ‘게다’를 편하게 신기 위해 제작된 일본의 전통 양말 ‘타비’(엄지 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이 분리됨)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1989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처음 발표한 타비 슈즈는 발표 당시에는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다양한 스타일과 표현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었다.
첫 번째 패션쇼에서 전통적인 타비의 플랫 디자인을 굽이 있는 부츠로 바꾸고, 밑창을 붉은 페인트로 칠해 모델들이 하얀 런웨이를 걸을 때 부츠의 갈라진 발자국이 남도록 했다. 매 시즌 타비 슈즈는 새로운 버전으로 출시되었고 2012년 봄여름 컬렉션에는 샴페인 뚜껑과 그 라벨을 사용해 재활용하여 타비 슈즈를 만들기도 했다. 론칭 35년이 지나면서 타비 슈즈는 어느덧 메종 마르지엘라의 시그니처 아이콘이 되었다.
메종 마르지엘라 브랜드는 1988년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와 제니 마이렌스가 함께 만든 브랜드이다.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이었으나 현재는 메종 마르지엘라로 이름이 바뀌었다. 창업자인 마틴 마르지엘라는 1957년 벨기에 북동부 공업 도시인 헹크(Genk)에서 태어났다. 마르지엘라는 어린 시절 앙드레 쿠레주와 파코라반 디자이너에게 매료되어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0대 시절 중고 옷을 분해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실험적인 해체주의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고, 깨진 도자기와 헌 신발 끈과 같은 소재를 활용하여 친환경적 접근 방식의 업사이클링 창작물을 만들기도 했다. 마르지엘라는 벨기에의 유명한 패션 학교인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다녔고 1979년 졸업 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1984년 파리의 장 폴 고티에 디자인팀에 합류하여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출발하면서 패션 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4년 후인 1988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을 론칭하였으며 기존의 접근 방식에서 틀을 깬 획기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컬렉션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패션쇼가 끝나는 마지막 런웨이 무대에서 인사를 하며 자신을 알리고 집중적인 시선을 받는다. 반면 마르지엘라는 런웨이 무대에서 디자이너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패션계에서 유명세와 달리 얼굴 없는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인터뷰도 거의 없으며 자신의 익명성을 유지한 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의 익명성은 메종 마르지엘라의 라벨에도 나타나듯 브랜드의 이름 없이 숫자로 특유의 상징성을 나타냈다.
네 개의 스티치와 ‘0-23’까지의 숫자(사진②)로 표현했다. 네 개의 스티치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라벨의 숫자들은 익명성을 의미한다. 이 숫자들은 상품의 각 라인을 상징하는 숫자에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숫자 0인 오트 퀴튀르 컬렉션인 아티즈널 (Artisanal)은 메종 코드의 무한한 창의성과 탐구를 의미한다. 숫자 1과 10은 여성복 컬렉션과 남성복 컬렉션 라인, 3은 향수, 4와 14는 여성복과 남성복 컬렉션(주로 재발매 및 재해석되는 상품군), 8은 아이웨어 컬렉션, 11은 여성과 남성 액세서리, 12는 파인 주얼리 컬렉션, 13은 오브제와 출판물, 15는 주문 제작 및 컬래버레이션 라인, 22는 여성과 남성 신발 컬렉션을 의미한다.
1989년 봄여름 첫 컬렉션에서 주요 색상들은 검정, 흰색, 빨간색과 같은 강렬한 색상으로 진행되었고 모델들은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다. 마르지엘라는 마스크와 가발, 때로는 스타킹을 활용하여 모델의 얼굴을 가리게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이 예쁜 모델 얼굴이 아닌 의상에 집중되도록 하기위해서였다. 무대 또한 화려한 런웨이 대신 흰색 천을 깔고 미니멀한 배경으로 빨간 발자국이 찍히는 파격적인 연출을 보여줬다.
1989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파리 외곽의 버려진 놀이터에서 진행되었고 좌석은 선착순으로 배치되었다. 또한 그 지역의 어린이들이 맨 앞줄에 앉는 특권을 누렸다. 놀이터 바닥을 런웨이 무대로 걸으며 일부러 넘어지는 모델들의 연출은 전통적인 패션쇼의 경계를 허물며 독창적인 표현을 시도한 사례로 남았다.
마르지엘라는 ‘해체주의’라는 새로운 패션을 도입했다. 의복 구성의 형식을 파괴한 이 개념적 디자이너는 노출된 솔기, 마무리하지 않은 단 처리, 해체주의적 방식을 통해 의복의 구조와 생산과정을 노출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했다. 솔기들이 노출되고, 안감이 드러나며, 느슨한 실들이 촉수처럼 늘어지는 등 방식으로 마르지엘라는 패션의 가장 기초적 요소들을 파괴하였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조합하였다.
해체주의는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후기 구조주의 사상의 하나다.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프랑스의 비평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비평이론에서 찾았다. 패션에서 ‘해체’라는 용어는 1989년 ‘디테일스(Details)’ 잡지에서 빌 커닝햄이 처음 언급했다. 1989년 10월 마틴 마르지엘라의 파리 컬렉션에서부터 해체주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1989년 그의 최초의 컬렉션은 독특하게 좁은 어깨를 특징으로 하였는데 마르지엘라는 이를 ‘시가렛 숄더(cigarette shoulder)’라고 불렀다. 이것은 1980년대 파워드레싱(power dressing)이 지배하던 시대에 대한 반항의 표시였다. 컬렉션은 플라스틱 드레스, 소매가 찢긴 재킷, 안감 소재로 만들어진 스커트, 오버사이즈의 남성용 바지 등으로 구성된 하나의 실험적인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자료 제공: OTB 코리아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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