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윤 대통령의 계엄령 파동…대한민국 피크아웃인가

입력 2024-12-04 17:42   수정 2024-12-0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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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파동이 참담한 실착으로 끝났다. 지도력은 심각하게 훼손됐고 시민들의 불신은 깊어졌다. 정국은 대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안보 분야의 영속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자유주의 복원을 기치로 내건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좌파적 토양을 걷어내는 데 많은 역량을 쏟아부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 때도 ‘반국가세력 척결’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입법폭주와 발목잡기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주도면밀하지 못했고 판단 능력도 부족했다.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택한 것, 국무위원 상당수의 반대에도 결행한 것, 자유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반법치·반헌법적 행태를 보인 것, 모두 문제적이다. 윤 대통령은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윤 대통령의 착오와 무책임을 추궁하는 것과 별개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한국 사회는 경제 산업 문화 군사 분야의 눈부신 성취에도 늘 정체성의 혼돈을 겪어왔다. 정체성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느냐에 대한 공감대다. 우리 국민이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으며 어떤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느냐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의 좌우 대립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배양되고 착근된 것이다. 박정희 장기 독재와 가혹한 군부정권의 압제 속에서 배태된 반미·반일·반기업 캠페인은 역설적으로 경제 성장의 자양분을 받아먹으면서 마침내 우리 정치 지형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에 걸친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이 주효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경제적 좌파뿐만 아니라 종북 좌파라는 특이 세력이 발호하게 된 배경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면서도 자유주의 문명의 세례를 거부하고 폐쇄적 민족주의 세계관으로 움츠러들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역사”라는 노무현식 세계관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는 세계사적으로도 희귀한 한국의 경이적 성취와 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하다고 말하면서 그 국민들이 함께 건설한 나라는 불의와 비열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는 모순에 빠진다.

세계관의 격돌에는 중간지대라는 것이 없다.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사생결단식 내전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상대방을 향한 언사는 항상 거칠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에선 양심이나 규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자기 진영의 모든 부조리는 덮고 용인한다.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의 중도 하차 가능성과 이 대표의 득세를 확인한 행정부는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눈치게임 속에서 구조개혁과 규제 혁파 추진 동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뜩이나 경제와 산업, 외교와 국방, 산업 재편과 혁신, 성장과 일자리 모두 총체적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좌파 진영의 돌격대장인 민주노총이 무기한 파업을 선언하면서 광화문 총궐기 동원령을 내렸다. 시계는 대통령 탄핵과 사법처리에 맞춰져 있다.

이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북한·러시아 군사동맹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치투쟁이 우선인 국회는 저성장 안보위기 전력위기 수출위기에 관심이 없다. 실제 그것은 행정부의 책임이다. 정치는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세계관이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경제·안보 복합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 상실과 별개로 이 대표의 좌파 포퓰리즘적 정체성은 여전히 미덥지 않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약소국으로 살아왔다. 주변 강대국들이 기침을 하면 몸살을 앓아야 했다. 미국이 중국을 핍박하면 우리도 고생을 면치 못한다. 작금의 제조업 위기도 그런 연유로 앞당겨진 것이다. 갖은 고생 끝에 이제 겨우 선진국 대열에 올랐는데 다시 미끄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모든 국가적 역량을 경제와 산업에 쏟아부어야 할 판에 정치적 내전만 격화하고 있다. 언젠가 대한민국의 피크아웃을 돌아본다면 바로 오늘,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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