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19세기 뉴욕상류층의 사랑과 회한…여성 첫 퓰리처상

입력 2024-12-09 10:00   수정 2024-12-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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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는 1920년 출간하자마자 기록적 판매량을 올리며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 이디스 워튼이 이 작품으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이 불식됐다. 아울러 “헨리 제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순수의 시대>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으며 세 차례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다. 올해 5월에 발표한 뉴진스의 ‘버블검’ 뮤직비디오에 민지가 <순수의 시대>를 읽는 장면이 나오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순수의 시대>는 1870년대 뉴욕 상류사회의 관습과 풍속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다양한 사람의 복잡다단한 삶을 통해 시대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디스 워튼은 1862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해 유년 시절에 뉴욕 상류사회를 직접 체험했다.

뉴욕은 글로벌 문화의 중심이자 가장 개방적인 도시로 우뚝 섰지만 소설 속 뉴욕은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수천 년간 이어오는 유럽 귀족에 대해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는 뉴욕 상류층은 더욱 형식과 예법에 집착하며 “질병보다 추문을 더 두려워하고, 용기보다 체면을 중히 여기며” 살았다.

<순수의 시대>가 세 번이나 영화로 제작된 배경에는 가슴 저미는 사건이 이어지는 사랑의 트라이앵글이 자리한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가운데 세 사람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뉴랜드 아처, 메이 웰랜드, 엘렌 올렌스카가 그들이다. “남성은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숨겨야 하고, 그녀는 혼기에 든 처녀로서 숨길 과거가 없어야” 하는 뉴욕에서 뉴랜드는 과거 여성 편력이 있었고, 메이는 “빛나는 미모, 건강, 승마술, 우아한 태도, 민첩한 머리”를 가진 최고의 신붓감이었다.
결정적 순간에 날아온 소식들
메이와 약혼을 한 뉴랜드는 빨리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웰랜드가에서는 준비할 게 많다며 결혼을 자꾸 미룬다. 메이 웰랜드와 사촌 간인 폴란드 백작 부인 엘렌 올렌스카가 유럽에서 뉴욕으로 오면서 스토리가 흥미로워진다. 엘렌은 백작과 이혼하고 뉴욕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당시만 해도 이혼녀로 사는 일이 매우 불리했기에 친척들은 엘렌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변호사인 뉴랜드가 엘렌을 설득하는 일을 맡게 된다.

뉴랜드는 판에 박힌 생활을 하며 사람을 가려 만나는 뉴욕 상류층과 달리 하녀를 “얘야”라고 부르며 자신의 오페라 망토를 입혀 심부름 보내는 엘렌에게 호감을 느낀다. 결혼할 사람이 정해졌는데 “불꽃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의 사랑을 만나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급기야 뉴랜드는 엘렌에게 고백하고, 엘렌도 같은 마음임을 확인한다. 둘의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 공교롭게도 웰랜드가에서 결혼을 허락한다.

뉴랜드는 잠자코 결혼생활에 전념하면서 종종 엘렌의 소식을 듣는다. 백작과 다시 합치는 것이 그녀에게 몹시 힘든 일이라는 사정을 알게 된 뉴랜드는 엘렌에 대한 마음이 나날이 커지자 중대 결단을 내린다.

뉴랜드가 아내 메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려는 순간 메이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다. 남편의 마음을 알아챈 메이가 미리 엘렌을 만났고, 엘렌은 사촌 메이의 안녕을 빌며 떠날 것을 결심한다.
불꽃은 다시 타오를 것인가
불꽃처럼 다가온 사랑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뉴랜드는 메이의 곁을 지키며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의무를 다한다. 막내를 간호하다 옮은 폐렴으로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뉴랜드는 “지루한 의무”였던 자신의 결혼이었지만 “의무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한”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과 “결혼에서의 일탈은 추악한 욕정과의 투쟁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슬픔에 잠긴다.

결혼을 앞둔 아들 달라스는 아빠 뉴랜드에게 옛사랑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린다. 57세의 뉴랜드, 끝내 백작에게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서 혼자 지내는 엘렌을 만날 것인가. 근 30년간 눌러두었던 불꽃이 다시 타오를 것인가.

<순수의 시대>는 1870년에도 유행의 선두를 달리던 화려한 옛 뉴욕과 그 안에서 계급을 형성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마음을 뒤흔드는 사랑도 맺어지지 않을 수 있고, 그런데도 이어지는 게 인생임을 보여준다. 무엇이 순수인지, 과연 순수는 지켜질 수 있는지, 마음을 이리저리 가늠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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