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넌 두희는 17년을 함께한 나의 반려동물이다. 나는 처음으로 두희를 마음껏 쓰다듬었다. 빳빳하지만 부드러운 털들이 손끝을 지나갔다.”
정덕시 작가의 장편소설 <거미는 토요일 새벽>의 첫 문장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반려동물’에 대한 익숙한 기대를 깬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두희가 거미란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두희가 타란툴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질문들이 쏟아진다.”
타란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미류로 독성을 지녔다. 정 작가의 소설은 한국경제신문과 은행나무 출판사가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이다. 응모작 367편 가운데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개나 고양이와 달리 인간과 교감이 힘든, 거의 절대적인 단절 상태인 거미를 반려동물로 다룬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평했다.
소설은 주인공 수현이 거미 두희를 기억하고 두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반려 거미에 쏟아지던 호기심과 혐오, 거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과의 갈등, 거미 두희를 인공적인 환경에 키우는 일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던 두희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일까지, 주인공은 천천히 애도의 과정을 통과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반추한다.
요즘 유행하는 ‘펫로스’란 주제, 거미라는 독특한 소재에만 기대지 않는다. 이 소설의 미덕은 인간 중심적이고 따듯하기만 한 손쉬운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결국 소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해 불가능하다고 해서 가족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이 심오한 질문은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타자가 타자로 존재하더라도 닿으려고 애쓰던 순간만은 분명히 남아 삶의 여러 모양을 만들어낸다는 발견, 주인공 수현이 애도 과정에서 해내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수현이 거미가 되는 꿈을 꾸는 데에 다다르면, 타자와의 연결 가능성은 문학적 차원으로 승화된다.
정 작가는 아르떼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신인이다. 거미를 기른 적은 없다. 대신 고양이와 15년 동안 살고 있다. 그는 “노묘라 언제든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걸 불현듯 체감했다”며 “밀린 방학 숙제하듯 반려동물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인터넷에서 타란툴라를 반려동물로 키운 사람의 글을 읽게 됐다”고 했다. 거미에 관한 책, 동물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점점 거미에 매료됐다.
타인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나의 소중한 존재, 어쩌면 나조차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존재는 누구에게든 있다. 낯선 거미 이야기지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나와 타인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지점에서 소설은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무언가와 함께 산다는 건, 그래서 서로를 관찰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다는 건 내게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