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화예술의 얼굴 없는 후원자들

입력 2024-12-08 17:22   수정 2024-12-0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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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모임에 초대받았다. 장소는 서울시립미술관. 퇴근 후 찾아가 보니 증권사 대표, 대학교 총장, 사모펀드 운용사 부회장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로비에 마련된 만찬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후원회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해온 사람들의 모임이어서 그런지 시종일관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2014년 3월 사단법인으로 출발한 후원회는 현대미술의 저변 확대와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증진을 위해 소장품 기증, 예술인 창작 지원, 후원금 조성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최은주 미술관장은 미술관이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바로 후원회라며 감사를 표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키다리 아저씨'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미술관에 후원회가 왜 필요할까 싶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등 상당수 공공 문화예술 기관에는 민간의 자발적인 후원회가 존재한다. 예술의전당 후원회는 누적 후원금이 1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 시기에 활약한 예술가 뒤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듯이 문화예술이 꽃피기 위해서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민간 후원이 위축되고 있다. 2020년 550억원까지 불어났던 국내 문화예술단체의 기부금 수입은 2021년 396억원, 2022년 392억원으로 급감했다. 한국과 미국 문화예술단체의 재원 구조를 뜯어보면 한국의 기부금 비중은 3%로 미국(30%)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자체 수입 비중도 한국은 18%로 미국(60%)보다 낮다. 한국의 문화예술단체들이 공공지원금(79%)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유다. 민간 기부가 더 늘어나도 시원찮은 마당에 오히려 줄고 있어 문화예술계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후원 확대 위한 인센티브 절실
최근 몇 년 새 정부가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확대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해법은 민간의 후원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인 인센티브 마련이다. 해외의 성공 사례도 있다. 프랑스는 2003년 문화예술 사업에 대한 민간의 참여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메세나법을 제정했다. 기업들이 문화예술 분야에 기부하면 세액공제해주고, 기업들이 구입한 예술품의 전시나 대여에도 혜택을 줬다. 그 결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민간의 기부금은 2010년 3억8000만유로에서 2020년 6억3000만유로로 늘었다. 한국도 2013년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문화예술 분야 기부에 대해 손금산입만 해줄 뿐 세액공제 혜택은 주지 않고 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세액공제를 조속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문화재단에 주식을 출연할 때 적용하는 상속·증여세 면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지금 한국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문화재단 같은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자하면 지분율 5%에 해당하는 주식까지만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주고 있는데, 미국(20%) 일본(50%) 등의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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