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들 그냥 집에서 덕질이나 하게 해주세요."
가수 안예은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여의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8일 소셜미디어에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진을 게재하며 "진짜 너무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예은이 자신을 지칭한 '오타쿠'는 일본 애니메이션 또는 게임, 소설 등 문화를 소비하는 이들을 총칭한다. 광범위하게 특정 분야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 혹은 팬덤을 일컫기도 한다.
이들은 주로 동호회,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혹은 인물을 좋아하는 경우 은둔하며 이를 향유하기도 한다.
안예은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오타쿠들까지 거리로 나오게 된 현 상황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안예은 외에도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오타쿠들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7일 온라인상에는 "올라온 시위 영상 중 제일 신기한데 뭔지 모르겠는 영상"이라는 제목의 글이 확산됐다.
영상에는 남성 두 명이 코요태의 '순정'에 맞춰 펜 라이트를 든 양손을 쭉 펼쳐 왼쪽, 오른쪽으로 휘두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는 오타쿠 문화의 일종으로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한 응원 퍼포먼스 '오타게'라 한다. 일반적으로 팬들이 아이돌 콘서트 중 합을 맞춰 동시에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친다. 국내에서는 한 애니메이션 관련 전시회 물품보관소 앞에서 참가자들이 단체 오타게를 추는 장면이 포착돼 화제가 된 바 있다.
네티즌들은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퍼포먼스", "덕질 포기하고 집회 나오는 거면 진짜 심각하다는 거다", "원래 있던 세계로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 "날도 추운데 활발하다", "시위에 특화된 몸놀림. 너무 멋있다", "코요태 팬들 응원법인 줄 알았다" 등 응원의 반응이 잇따랐다.
영상을 게재한 최한숲 씨는 9일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계엄령 떨어지던 날 게임하고 있었는데 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너희 나라 전쟁 났냐'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집회 참여 계기를 전했다.
최 씨와 20대 후반 10여명과 집회에 참석했다. '오타쿠들의 축제'라 불리는 애니메이션·게임 축제 'AGF 2024'에 방문했다가 집회 소식에 발걸음을 여의도로 돌린 이들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 관련 깃발을 지참해 참가자들의 시선을 강탈하기도 했다.
최 씨는 "많은 분이 저희에게 '오타쿠가 세상에 나왔다는 건~'하고 말씀해 주시는데 평소에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정말 많았다. 2016~2017년 집회에도 다들 참여했었다"며 "개인으로 있을 땐 티를 크게 내지 않았지만, 이번 집회에선 저희끼리 함께할 수 있어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지난 7일 밤 열린 촛불 집회에는 2030 세대의 참여가 늘면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이돌 응원용 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우리나라 정상 영업합니다', '웹소작가 마감하기도 급한데 권력남의 순정이 웬 말이냐' 등의 재치 넘치는 글귀가 적힌 깃발을 들고 온 이들도 많았다.
에스파의 '위플래시'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탄핵, 윤석열!" "사퇴, 사퇴 윤석열!"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시작된 집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국회의사당 5번 출구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지속해서 열린다. 광화문에서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윤 대통령 지지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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