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돌입하는 등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증권가는 코스피 지수 단기 저점을 2300선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증시를 뒷받침해줄 수급이 불안정한 데다 환율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까지 오르고 있어 2300선이 깨지면 언더슈팅(단기급락)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10일 "코스피 60일 이격도(종가와 이동평균 간 비율)는 93 수준까지 하락했으나 급락 상황에서 저점 형성이 보통 90 수준에서 나타났던 만큼 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코스피는 2300까지 하락할 위험도 있다"며 "이격도 측면에서 보면 2300 부근에서 과매도를 인지한 강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예상했다.
지난 주말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뒤 탄핵 대치 정국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전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동반 연저점을 갈아치웠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8월5일 '블랙먼데이' 때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고, 코스닥 지수는 하루에만 5% 넘게 급락했다.
개인 투자자는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8890억원, 코스닥시장에서 3030억원 등 총 1조192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개인은 지난 8월 블랙먼데이 사태 당시 외국인과 기관 자금을 받아내는 등 저가 매수에 나선 바 있는데 이번에는 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4~6일 계엄령 이슈로 외국인 투자자는 코스피에서 약 1조원 순매도로 대응했으나 전날에는 1000억원 순매수로 대응했다"며 "기관 중에서는 특히 연기금이 8432억원을 순매수하면서 매수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9월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전쟁 우려로 한국 주식시장에서 순매도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이미 한국 주식 시장에 대한 비중을 축소한 상황"이라며 "코스피의 외국인 지분율은 31%로 지난 7월 고점이었던 35% 이후 하락해 연초 수준까지 이미 내려왔다"고 부연했다.
변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 수준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를 밑돌면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놓고 보면 매력적인 구간"이라며 "다만 2019년 0.76배 수준까지 하락한 사례도 있어 정치 불확실성 확대로 인해 단기적인 언더슈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불안을 자극하는 건 환율이다. 환율이 크게 오르면 기업의 매입 외환(해외에서 받을 외화를 은행으로부터 선할인해 받는 여신) 물량이 늘어나고, 대기업 위주로 외화 예금을 빼내면서 은행의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 파생상품 관련 추가 담보 제공 요구(마진콜)도 유동성 부족의 잠재 요인이다.
또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가운데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늘어 금융그룹 전체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환율이 10원 높아지면 자기자본비율이 약 0.01∼0.02%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환율 상승으로 철강·반도체·석유화학·운송 등 업종과 기업에 자금 조달과 수익성에 문제가 생기면 이들에 대출해준 금융사의 건전성에도 부담이 커진다.
전날 서울 외환시장 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7.8원 오른 1437.0원에 마감했다. 이날 종가는 주간 기준 2022년 10월24일(1439.7원) 이후 2년 1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한 때 1438원을 넘기도 했다.
현재 상승폭이 이어져 1450원에 진입하게 되면 1997년 외환위기(1962.5원),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1570.7원)에 이어 세 번째 높은 수준으로 기록된다.
변 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같이 경제가 0%대 성장의 심각한 위기를 반영하지 않는 이상 1500원대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면서도 "1%대 성장을 고려해 볼 때 1400원대에서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노무라증권은 원·달러 환율 1500원대 진입 가능성을 내다봤다.
노무라증권은 계엄 이후 원화 약세를 전망하며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 금리 상승 및 강달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2분기까지 원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며 내년 5월 말까지 원·달러 1500원을 목표로 달러 매수를 추천한다"고 했다.
노무라증권은 원화 약세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한은의 외환보유액 대응 여력 부족, 1400원대 환율에 대한 정책 당국의 관점 변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헷지 유인 감소, 한국의 약화된 거시경제 펀더멘털, 정치적 불확실성 증가 등을 꼽았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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