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10일 15:2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두산그룹이 6개월간 추진해 온 대대적인 사업 재편을 포기하기로 했다. 계엄령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주가가 크게 하락한 데다 마지막 희망인 국민연금공단이 기권을 던지기로 한 결과다.
두산에너빌리티는 10일 이사회를 열고 오는 12일 열기로 한 임시 주주총회 철회를 의결했다. 이로써 당초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주주총회에서 분할합병계약 안건을 상정해 승인을 구하려 했던 계획을 포기했다.
두산그룹이 사업 재편을 포기한 것은 급격한 주가 하락 탓이다. 계엄령이 선포된 뒤 탄핵 국면으로 이어지며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관련주인 두산그룹주가 일제히 하락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계엄 선언 당일인 지난 3일만 해도 2만1150원으로 주식매수예정가액(2만890원)을 웃돌며 사업 재편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주가는 계엄 이튿날 10.1% 빠지더니 5거래일 연속 하락해 1만7000원선까지 주저앉았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 하락에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대거 불어날 것으로 예상돼 분할합병 비용이 크게 불어났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에 대비해 6000억원을 확보해놓았다. 시가총액의 약 4.5% 규모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 6.85%를 전량 행사하면 무산된다는 의미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합병 회사의 주주가 회사에 대해 주주총회 전 합병 반대 의사를 통지해 주식매수 예정가액으로 보유 주식의 매수 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다. 주총 표결 때 기권이나 반대를 표시해야 주식매수청구권을 가질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로 주가가 단기간 내에 급격히 하락해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간 괴리가 크게 확대돼 찬성 입장이었던 많은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해 반대나 불참으로 선회했다”며 “특별결의 가결 요건 충족 여부가 불확실해지고 당초 예상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공시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사실상 기권표를 행사하며 분할합병에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게 됐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 9일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주주총회 분할합병계약서 승인안에 대해 ‘조건부 찬성’을 하기로 했다. 이날 기준 주가가 주식매수 예정가액(두산에너빌리티 2만890원, 두산로보틱스 8만472원)보다 높은 경우에만 찬성하기로 했다. 주가가 예정가액을 크게 밑돌아 사실상 기권한 셈이다. 국민연금이 찬성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했던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마지막 끈이 떨어지게 된 셈이다.
국민연금은 수익률 관리 차원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을 받기 위해 분할합병안에 동의하더라도 주가가 낮으면 기권이나 반대를 표시할 수밖에 없다. 과거 국민연금은 SK와 SK머티리얼즈 합병 때도 조건부 찬성을 했으나 주가가 5%만 밑돌며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크지 않았다. 2014년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1조6000억원에 달해 무산된 사례가 있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여러 주주들이 권리를 행사했다.
두산그룹이 사업 재편을 포기한 것은 사업 추진 6개월여 만이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법인과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투자법인으로 인적분할한 후 투자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향의 사업 재편을 추진해왔다. 두산은 지난 7월 사업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이후 금감원의 분할·합병 비율 정정 요구에 한 차례 좌초 위기를 겪었다. 이에 따라 두산은 이사회를 통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분할·합병 비율을 기존 1 대 0.031에서 1 대 0.043으로 상향했으나 이조차 무산됐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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