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명동 상점가의 풍경이었다. 평일 오후임을 감안해도 손님을 아예 끌지 못하는 점포들이 여럿이었다. 거리 초입에서 각종 주전부리를 파는 노점상 주인 A씨는 “주말부터 해서 외국인 손님들이 줄었다”며 “명동 내에 평소에도 경찰차가 지나다니는데 계엄 소식 때문인지 지레 경찰차를 보고 수군거리거나 자리를 뜨는 외국인들이 보였다”고 전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겨우 살아나나 했던 서울의 핵심 관광 상권들은 외국인들 발길이 끊겨 또다시 찬바람이 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날 명동 거리를 찾은 캐나다 관광객 엠마 트랑블레 씨(27)는 “오래 전부터 계획된 여행이라 방문했다. 주말에 광화문을 관광하러 갔다가 시위 인파를 보고 일찌감치 호텔로 돌아가긴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치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관광을 자유롭게 해도 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는 업장들은 “코로나19 사태 상황으로 돌아갈까봐 두렵다”고 아우성이다. 명동 뒷골목의 한식 전문점 업주 이모 씨(56)는 “그 어렵던 코로나 시절을 지나 이제 겨우 장사가 좀 되는데 주말에 손님이 줄었다. 또 불황이 닥칠까봐 불안하다”며 “코로나 당시 차마 가게를 못 접어서 진 빚도 좀 있다.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만 바라는 중”이라고 푸념했다.
지하상가 한 의류매장 윤모 사장(29)도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매출로 한 주를 버티는데 저번주는 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주말 내내 떨이로 내놓은 티셔츠 몇 개만 겨우 팔았다”며 “인건비는커녕 전기료도 못건졌다. 이렇게 12월을 보내고 나면 문 닫는 가게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의 투숙·행사 취소 속출로 호텔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 고객들 중심으로 취소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이 호텔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자마자 당장 그 주 주말 손님들부터 취소가 나왔다. 한때 전화 문의가 늘어 프런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한 호텔 역시 계엄 선포 직후 외국인 투숙객들이 프런트 데스크로 몰려와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특히 연말은 각종 협회나 정부 기관, 기업 등이 각종 행사나 모임으로 연회장을 빌려 행사를 개최하는 수요가 많지만 올해는 계엄 여파로 행사를 급하게 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종합청사와 인근 식당가에도 비상계엄 사태 직격탄을 맞은 정부 부처들의 예약 취소 전화가 걸려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의도, 시청 등 직장인들 주요 회식 장소가 몰린 지역 매장들도 예약 취소 통보가 속출하는 건 비슷하다.
자영업자들은 “이번 사태 여파가 코로나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주요 자영업자 커뮤니티는 “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반에 반토막 났다”며 울상인 분위기다.
이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와 같은 내수 침체 경로가 나타난다면 자영업자를 덮친 갑작스러운 불황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던 2017년 1월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보면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 등을 살펴봤을 때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는 서비스업, 설비투자, 민간 소비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3분기 이후에 그 영향이 점차 소멸한다”고 짚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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