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근 시행 가능성을 수차례 공언한 증시안정펀드(증안펀드)를 두고 당국 안팎과 금융투자업계에서 엇갈린 전망이 교차하고 있다. 증안펀드는 증시가 급락하고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경우 시장 안정화를 목적으로 투입하는 펀드다.
'10조원 규모' 증시안정펀드 논의 중
10일 금융당국 안팎에 따르면 당국은 증안펀드 집행 여부와 투입 기준 등을 놓고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계엄령 발표와 해제 이후 증시가 출렁이자 10조원 규모 증안펀드를 시장안정 대책 중 하나로 거론해왔다. 당국과 금투업계 안팎에선 △증안펀드 집행이 연내 실제로 필요할지 △어떤 기준을 두고 집행해야할지 △집행 효과가 있을지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분위기다. 당국에 따르면 이번 증안펀드는 2022년 증안펀드 골격을 이어받는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국책은행과 5대 금융지주, 미래에셋증권, 삼성생명 등 금융회사에서 10조원을 조성한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등 증권 유관기관에선 7600억원을 조달한다.
이를 그대로 따를 경우 이번 증안펀드는 당국이 공언한 10조 이상인 총액 10조7600억원으로 조성된다. 올들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등 국내 증시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19조3906억원)의 약 56% 수준이다. 코스피 하루 평균 거래대금(10조8913억)과는 거의 맞먹는 규모다.
'조속 가동' vs '아직 아냐'
증안펀드의 집행 필요성과 집행 시점 등을 두고서는 금투업계 안팎의 이견이 큰 분위기다. 개인투자자 일부는 최근 수일간 증시 하락세를 바탕으로 조속한 증안펀드 가동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당국과 증안펀드 투자위원회는 이전부터 '증안펀드는 부양책이 아니라 안정책'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인위적인 시장 개입책인 만큼 단기간 장 움직임을 고려해 결정에 나설 수는 없다는 얘기다. 앞서도 조성한 증안펀드를 활용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증안펀드는 그간 다섯 번 조성돼 세 번 실제 투입됐다. 1990년 버블 붕괴(4조8500억원), 2003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4000억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5150억원) 등에 활용됐다.
2020년엔 코로나19발 증시 폭락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엔 글로벌 금리인상과 경기악화로 인한 증시 하락세를 저지하기 위해 각각 조성안이 발표됐으나 실제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출자 절차 등을 거치는 기간에 증시가 반등하고 투자 심리가 살아난 영향이다.
이날 국내 증시는 계엄령 사태가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난 4일 이후 처음으로 반등해 상승 마감했다. 코스피지수는 2.43% 오른 2417.84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5.52% 오른 661.59에 마감했다.
득실 두고도 전망 엇갈려
예상 효과를 두고도 전망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증안펀드가 증시를 떠받치면 투자자들의 매수심리가 그만큼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지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증안기금은 당국이 증시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투자심리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최근 증시 하락세가 비(非)시장 요인에 기인한 만큼 집행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예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최근 증시 부진의 원인은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며 "대통령의 거취 관련 불확실성, 극단적인 여야 갈등 등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금을 투입해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안펀드 집행이 곧 정국 안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며 "섣불리 투입했다간 국내 증시에서 이탈하는 외국인 물량만 떠안는 자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서 보고서를 통해 "그간 국내 증안펀드는 주식시장의 일시적인 불안심리를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나 주가 반등이나 유동성 증가 효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며 "일부 효과조차도 당시 시행된 다른 정책으로 인한 영향 가능성이 있는 만큼 효과를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주가 하락기엔 비율고정전략을 따르는 기관투자가 등이 주식을 매수하는 식으로 시장안정화 효과를 줄 수 있다"며 "이들이 자율적으로 시장 원리에 따른 안정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연적 '뒷북' 구조…플라시보 역할에 가까워"
증안펀드의 조성 계획이 발표됐다고 해서 당장 10조원을 집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금융사 등으로부터 캐피털 콜(실제 투자할 때 자금 납입)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라서다. 앞서 조달한 자금은 투자 미집행에 따라 대부분이 출자처로 다시 돌아갔다. 현재 즉각 집행 가능한 증안펀드는 조 단위를 한참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각 금융사 등의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등 별도 출자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기에도 일정 시일이 소요된다. 2022년엔 9월 말 재가동 작업을 시작해 한달만인 같은 해 10월 말에 출자금 의결이 완료됐다.
증안펀드 관련사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증안펀드는 필연적으로 '뒷북'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집행 논의와 절차를 거치다보면 증시가 반등하고, 결국은 펀드 집행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조성안 발표 자체가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 플라시보(위약) 효과가 있다"며 "만일 실제 집행 후에도 증시가 내리면 투심이 더 악화할 것인 만큼 펀드 가동보다는 발표에 무게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가동시엔 반도체·조선 등 수혜"
한편 금투업계에선 증안펀드가 가동될 경우 시가총액 비중이 크면서 거래대금이 적은 업종이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증안펀드는 전체 지수를 떠받치는 안정화 수단이 목표인 만큼 개별 주식을 골라 매입할 가능성은 낮다. . 금융연구원 등에 따르면 앞서 증안펀드가 어떤 종목을 매입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된 바가 없다. 가장 최근 투입된 2003년엔 총 4000억원을 코스피 70%, 코스닥 30%에 각각 투입했다. 당시 시장 대표 종목과 지수상품 등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2022년엔 증안펀드가 코스피200 상장지수펀드(ETF)와 인덱스 펀드 등에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체 지수를 부양할 수 있는 상품을 산다는 얘기다.
금투업계는 펀드가 지수상품 등을 매입해 유동성이 들어올 경우 주가가 탄력적으로 반등할 수 있는 종목이 수혜를 볼 것으로 보고 있다. 강대석 유안타 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정보기술(IT)·가전, 자동차, 조선 업종이 특히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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