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의 제안은 계엄령과 탄핵 정국 여파로 벼랑 끝에 몰린 우리 경제의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증시와 환율이 출렁이며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한국관광도 얼어붙고 있다. 내수가 직격탄을 맞아 자영업자와 기업들은 울상이다. 금융사들의 채권 투자 중단으로 기업 자금 조달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국가신용등급도 흔들릴 조짐을 보이는 등 사방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탄핵 정국이 경제로 전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다급한 상황 인식에서 여·야·정 모두 엄중한 책임감을 갖고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 뒤 4조1000억원 삭감 예산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일방 처리한 것은 이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삭감 예산안이 경제와 민생에 악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도 막무가내 통과는 적절하지 않다. 예비비를 정부안에서 절반(2조4000억원) 깎아 긴급한 산업 통상 변화에 대한 적기 대응이 어렵게 됐고,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기초연구·양자·반도체·바이오·원전 등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급증하는 마약·딥페이크 범죄 대응과 군 미래 전력 예산까지 대폭 칼질했다. 민주당은 증액이 필요한 부분은 향후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하겠다고 하지만 탄핵 정국에 쉽지 않다. 이 대표의 제안이 경제 민생을 챙기는 시늉을 하는 1회성 정략용이 아니라면 예산 왜곡을 바로잡는 후속 조치에 적극 응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민생정당이라면 경제 법안 처리도 회피해선 안 된다. 국가 미래를 위해 시급한 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반도체 특별법, 고준위방폐장법 등이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원전 신설 등을 담은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은 국회 보고 절차를 거치지 못해 7개월째 표류 중이다. 모두 민주당 등 야당에 가로막혀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 인하, 배당소득 분리과세 법안은 부결시켰다. 계속 이런 식이면서 수권 정당을 표방한다면 수긍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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